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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의 하루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2-20 02:01 게재일 2013-12-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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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하다. 그렇다고 책이 손에 잡히거나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다.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깝다. 카페에서라면 집중이 될까 싶어 책 두 권과 노트북까지 챙긴다. 웬 걸, 집만 못하다.`동양 고전의 바다`에도 빠질 수 없고,`사랑의 단상`도 더 이상 눈에 잡히지 않는다. 읽을 수 없다면 쓰기라도 하자. 쓰다 만 소설 카테고리를 찾아 노트북을 편다. 한 단락도 채우기 전,`꼰대의 위선`어쩌고 하는 어절 앞에서 커서만 깜박인다. 댐에 갇힌 물처럼 몸과 맘에 갇힌 문장은 출렁일 뿐 흘러내리지는 못한다.

번잡한 머릿속을 뚫고 옆자리의 수다만이 잘도 들어온다. 이렇게 된 바, 타인의 말에나 귀를 열어놓기로 한다. 혹시 뭐 하나 건질 수도 있으니. 역시, 엿듣기보다 나은 소설도 없다. 방관자나 관찰자의 자리란 얼마나 부담 없고 매혹적인 곳인지.

친구 두 명을 상대로 부동산업을 한다는 여자가 인간관계론을 설파한다. 듣자니`직설법의 무죄`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아마 사업상 불필요한- 사무실로 찾아와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하는 바람에 성가셔 죽는 줄 알았단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눈치 없는 상대는 기어이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가더란다. 저녁엔 신생 사무실을 낸 동료가 술을 사겠다며 전화를 걸어왔단다. 딱히 만나고 싶지 않아 고맙지만 안 챙겨줘도 된다고, 시작한 사업에나 더 신경 쓰라고 대답했다나. 어렵게 전화를 건 호의를 무시하는 거 아니라며 상대방은 전화를 끊어버리더란다.

자신이 뭘 잘못했냐고 여자는 열변 섞인 동의를 구한다. 에둘러 말하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커피가 싫다느니, 사업이나 잘 챙겨라느니 이런 식의 다소 무례한 어법을 연출할 필요는 없을 텐데. 상대의 호의가 귀찮다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무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덕에 우리는 괴물이 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각설하고, 이것이 소설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으로 커피만 홀짝인 한나절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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