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처럼 외딴 호숫가에 오두막 짓고 자급자족할 맘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자연을 찬미하고 내면을 살찌우는 기록물이 아니라 텍스트 하나하나가 `문학적 성과`로 출렁인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촘촘한 일상을 풍부한 관찰력과 서정적인 감각으로 묘사하는데, 그 방식이 구체적이고 섬세해 목이 멘다.
`집에 돌아오면 방문객이 들렀다 남긴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한 다발의 꽃이나 상록수로 엮은 화관, 혹은 노란 호두나무 잎이나 나뭇조각에 연필로 써놓은 이름이다. 좀처럼 숲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오는 길에 숲의 작은 조각들을 취해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반지를 만들어 내 탁자에 올려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189쪽)
청년 소로는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2년여의 자급생활을 하면서 기록물을 남겼다. 숲으로 가 온전히 제 뜻에 살며 삶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소중한 삶, 제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선택한 길이었다. 독자로서는 거창해 뵈는 그 소명의식보다 기록물이 주는 잔잔한 감동 덕에 소로가 위대해 보인다. 물질문명을 거부한 그는 유유자적의 `팔자 좋음`이 아니라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실천했다. 그런 그가 사람이 찾아온 흔적을 `굽은 잔가지`나 `짓눌린 잔디`, `한 움큼 뽑힌 풀`이나 `은은히 남은 시가 담배향`으로 짐작하는 서정적 붓대까지 갖추고 있으니 다시 보일 수밖에.
삶과 사색을 실천하는 작가가 문학적 감수성까지 빛나기란 쉽지 않다. 구구절절 마음 끄는 문장을 건질 수만 있다면 그 누군들 오두막 지으러 제 마음의 숲으로 떠나지 않을 것인가.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