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영화보다 현실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2-04 02:01 게재일 2013-12-04 19면
스크랩버튼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는 건 현실을 그리지만 현실에서 어느 정도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와 현실이 같다면 굳이 영화로 그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숱하게 제작되는 로맨틱 코미디는 현실보다 과장된 에피소드를 반영하고, 그것도 모자라 웬만하면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현실처럼 밋밋한 이야기의 나열에다 지리멸렬한 결말이라면 누가 영화관을 찾겠는가.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그 무엇에 기대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관을 찾는다.

오랜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다시 봤다. 이 영화는 위에서 말한 현실이 아닌 현실을 기대하는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리얼리티 최적화`가 그 목표인 것처럼 과장된 장면과 억지결말을 유도하지 않는다. 노회한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호흡하고, 영화 속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된 앵글을 들이댄다.

액자 영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우연히 새신랑 역을 맡게 된 호세인은 특정 장면에서 자꾸만 NG를 낸다. 마을 지진으로 죽은 사람의 수를 대본에 써져 있는 것보다 훨씬 줄여서 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라지만 죽은 사람 숫자까지 속여서 현실을 왜곡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는다는 표면적 설정은 신부 역을 맡은 테헤레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호세인의 마음을 전하는 데 맞춤하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절절하고, 더 애틋하고, 더 사무치고,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과장 없이 담아낸다.

현실을 벗어나 위로를 얻고 싶을 때 영화를 보러 간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음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구불구불 올리브 나무 사이로 멀어져 가는, 화답 없는 테헤레의 여정을 뒤쫓는 호세인의 다급한 발걸음은 곧 현실 속 관객의 것으로 바뀐다. 빽빽한 올리브나무 사이에 길이 있고, 저마다의 절절한 희비극을 안은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을 간다. 아련하고 애틋한 그 사연은 왜곡 없이도 가뿐히 영화의 명장면이 되어주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