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다시 봤다. 이 영화는 위에서 말한 현실이 아닌 현실을 기대하는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리얼리티 최적화`가 그 목표인 것처럼 과장된 장면과 억지결말을 유도하지 않는다. 노회한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호흡하고, 영화 속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된 앵글을 들이댄다.
액자 영화를 표방하는 이 영화에서 우연히 새신랑 역을 맡게 된 호세인은 특정 장면에서 자꾸만 NG를 낸다. 마을 지진으로 죽은 사람의 수를 대본에 써져 있는 것보다 훨씬 줄여서 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라지만 죽은 사람 숫자까지 속여서 현실을 왜곡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는다는 표면적 설정은 신부 역을 맡은 테헤레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호세인의 마음을 전하는 데 맞춤하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절절하고, 더 애틋하고, 더 사무치고,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과장 없이 담아낸다.
현실을 벗어나 위로를 얻고 싶을 때 영화를 보러 간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음을 확인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구불구불 올리브 나무 사이로 멀어져 가는, 화답 없는 테헤레의 여정을 뒤쫓는 호세인의 다급한 발걸음은 곧 현실 속 관객의 것으로 바뀐다. 빽빽한 올리브나무 사이에 길이 있고, 저마다의 절절한 희비극을 안은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을 간다. 아련하고 애틋한 그 사연은 왜곡 없이도 가뿐히 영화의 명장면이 되어주는 것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