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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번거노

등록일 2013-11-28 02:01 게재일 2013-11-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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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 선생의 `행복한 그림읽기`라는 블로그가 있다. 담백하면서도 분명한 논지의 글이 올라와 내 취향에 맞춤하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 그림으로 읽는 공자, 라는 코너가 있다. 공자의 활동 상황이 그려진 고전 그림을 제시하고 관련 고사 성어를 곁들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시리즈물이다. 내 짧은 소견으로 다른 학자들이 시도하지 않는 영역을 개척하는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호기심이 인다. 관련 그림을 찾아내는 수고도 대단한데다 그것으로 독자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그 중 오늘 읽은 `인번거노`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공자가 정치할 때 장사치는 저울을 속이지 않았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는 이가 없을 정도로 지도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공자 덕에 강해지는 노나라에 위기를 느낀 이웃 제나라가 계책을 꾸민다. 미인계를 써 노나라 군주가 미혹에 빠지면 공자가 충언을 할 테고, 충언을 멀리하게 된 군주에게 환멸을 느낀 공자가 결국 노나라를 떠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제나라가 원하는 대로 노나라 군주는 환락에 빠졌고, 자로가 스승인 공자더러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 공자는 `주군이 하늘에 제사 지낸 뒤 고기를 나누어주지 않으면 떠나겠다.(인번거노)`라고 답한다. 고기를 받지 못한 공자는 제자들을 이끌고 노나라를 떠난다. `그깐 제사 지낸 고기 못 받아 삐쳐서 떠나는 놈`으로 떠날 구실을 만든 것이다.

그건 공자의 진심이 아니었다. 공자가 달리 공자이겠는가. 어차피 떠날 몸, 구차하게 군주가 싫어서 떠난다고 핑계대지 않고, 스스로 모든 짐을 졌다. 남은 군주를 위한 배려로 위악을 떤 셈이다. 너무나 공자다운 생각이다. 충언이 통할 때까지 계속 설득하면 좋겠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멈추고 떠나는 수밖에 없다. 떠나는 와중에도 주군을 위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선한 자를 위한 방패막이가 아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한 자기희생이 아니던가. 공자가 아니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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