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여자가 먼저 말했다. 오늘 하루 허방에 발 디뎠다고. 맥박 뛰고 팔 저린 하루였단다. 관절 뻣뻣해진 손가락은 구부려지지 않았고 화덕처럼 달아오른 가슴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일 있는 곳에 말이 붙고, 이름 붙는 집에 흠집 먼저 보인다며 초점 잃은 눈으로 거울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일 만들지 않고 덕 쌓지 않는 것이 처신의 수칙이라며 머리칼을 마구 헝크는 것이었다. 급할 것 없던 나는 여자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주었다. 뛰는 심장에 가위질을 할 수 없다면 젖은 머리칼이라도 찢어 발겨야만 숨통 틀 것 같다던 여자는 금세 의자 안에서 편안해졌다. `뚫어뻥` 같은 주인의 가위질이 이리저리 막힌 여자의 물길을 싹둑싹둑 뚫고 있었다.
산다는 건 던적스러운 사다리 건너기와 같았다. 칸과 칸 사이 그 좁은 곳에 허방이 있었다. 그곳에 발 내딛는 횟수가 잦거나 그 헛발질의 강도가 셀 때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표현했다. 한 잔 술로도, 한 바퀴 달음질로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남은 화를 삭이러 여자들은 미용실로 향한다.
싹둑싹둑 설움의 휘파람처럼 검은 별 뭉치가 바닥으로 흩어진다. 굳었던 손가락도, 조여오던 심장도 제 자리를 찾아가는지 여자는 와불처럼 고요하다. 자르고 둥글어진 머리칼만큼 낯빛은 깊어진다. 예고 없이 스트레스 절정에 닿는 날이면 몇몇의 여자들은 미용실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자르고 휘감으면서 내려앉는 평화.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