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웃지 않는 아이들은 `평온한` 그들이 부러웠다. 관심 받지 못한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상처가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눈빛에 고인 사연은 절절해졌다. 외면에 지친 아이들은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사랑 받지 못했고, 사랑 받지 못하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열패감이 그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단순한 패배감이 아니라 고착에 가까운 자기포기처럼 보였다.
명랑한 아이들이 가벼운 랩 리듬처럼 슬리퍼를 끌며 지날 때 웃지 않는 아이들은 슬리퍼 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 곁을 지났다. 더욱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왼쪽 목덜미의 사마귀마저 가리느라 한껏 움츠린 자세가 되는 것이었다. 상처 받은 아이들은 이 세계야말로 모순적인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고 확신했다. 애초에 아이들에게 공정한 눈 맞추기를 할애하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그 맘을 열어주는 데는 끊임없는 눈 맞추기 말고 아무 것도 없었다. 여백조차 없는, 마음의 얼음성을 쌓는 아이들과 눈길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눈치만 웃자란 그 아이들에게 가식과 형식은 금물이었다. 그들 마음에도 빨주노초파남보 풍선은 부풀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맘속의 풍선이 맘껏 날 수 있도록 누군가의 눈 맞추기는 계속될 것이다. 눈 맞추기는 상처를 아는 자가 상처 입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일 터였다. 누군가의 상처를 안다고 말하기 전, 가만 다가가 그 아이와 눈을 맞추는 당신이라면 당신도 상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