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의 문예 활동 프로그램에서 만난 임 선생님은 그야말로 한결 같은 분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언제나 빨리 등장해 미리 온 회원들을 위해 예습 삼아 또박또박 교재를 읽어 주거나 책을 낭독해주신다. 그 모습을 가만 훔쳐보고 있노라면 공터 같았던 마음에 잔물결이 일곤 하는 것이었다.
한시라도 웃지 않으면 입술에 가시가 돋는다는 마인드로 언제나 생글생글한 낯빛이다. 마주한 사람 누구든지 그 과장 없는 미소에 감염되고 만다. 각 강좌실을 오르내리는 장애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부터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를 이끄는 것까지 선생님의 활동은 차분하면서도 구체적이다. 봉사하기엔 체력적 한계가 올 수 있는 연배인데도 끄떡없이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경청하는 회원들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점자를 더듬어 선생님이 읽어 주는 대목과 보조를 맞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큼직한 활자를 삼킬 듯이 얼굴 가까이 대고 읽어 내리는 이도 있고, 한 구절이라도 더 듣겠다는 듯 반듯한 자세로 선생님을 향해 귀를 한껏 여는 분들도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싶다는 열의가 그들을 그렇게 집중케 했다. 선량한 그들의 집념을 위해 선생님은 당신 가진 것 최선의 마음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아침 뉴스로 유럽의 고위급 신부들의 비양심적이고 허영심 많은 처세가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을 접한 뒤라 더욱 선생님의 모습이 고귀하게 보였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애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무엇이든 마음에 없으면 진정성이 없고 진정성이 없으면 좋은 일을 하고도 손가락질 받는다. 임 선생님의 경우를 보면서 마음에서 우러난 모든 선한 행동들 덕에 사람들 낯빛이 환할 수 있고, 세상이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