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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속 우주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1-06 02:01 게재일 2013-11-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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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보이는 공원에는 국화가 한창이다. 노랗거나 붉은 꽃무리는 드넓은 정원을 꽃이 불처럼 뒤덮었다. 가을꽃에 겨운 사람들의 움직임이 원경으로 보인다. 한껏 국화향에 취해도 좋을 그들의 품새가 어쩐지 느긋함과는 거리가 멀다. 성급한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일군의 무리들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 `꽃보다 인증샷`에 몰두하느라 그럴 것이다. 꽃놀이가 목적이 아니라 꽃을 상대로 인증샷이 필요한 것이 그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들은 이제 꽃 앞에서도 느긋할 여유가 없다. 먼 길 돌아온 `내 누님 같은 꽃` 옆에서도 맘껏 제 흥을 누리지 못하는, 빡빡하고 다급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느긋함과 평정심은 점점 우리 일상과 멀어져 가고 있다. 대신 보여주기 위한 짬, 위안이라는 말을 위로하기 위한 여유만이 우리 시간을 지배한다.

자신을 들볶지 않고, 대상을 관조하는 삶이 필요하건만 쉽지가 않다. 닦달하지 않고 담백하게 제 일상을 꾸리던 황상이 떠오른다. 정약용의 제자였던 황상은 말년에 `일속산방`을 마련했다. `좁쌀 한 톨 같은 작은 집`이란 뜻의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비의 삶을 꾸렸다. 세속이 욕망을 채우며 살라고 채근할 때 진정한 선비였던 그는 담백한 유유자적을 실천했다. 산수가 아름답다는 그의 기준은 큰 강과 산이 조화로운 곳이 아니라 좁은 시냇물과 자그마한 동산이 어우러진 곳을 말한다. 절벽이 기우뚱하고 바위 몇 점 있는데다, 눈을 환하게 열 수 있는 골짜기라면 그에겐 좋은 땅이었다. 그곳에 남향집을 지어 책꽂이 두 개에다 족할 만한 책을 꽂는 일 그것만으로도 그에겐 존재이유가 되었다.

소박하고 느긋하게 산 황상의 삶에서 좁쌀 속 우주론을 발견한다. 급할 것도 아등바등할 것도 없는 세상이건만, 현실이 그것을 요구한다는 핑계로 급하게 세파에 휩쓸린다. 황상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좁쌀 속에 우주가 있나니, 작고 소박한 것에서 여유를 찾아라. 느림과 한가로움의 미학을 마음결부터 심으라고.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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