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다시 백석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1-05 02:01 게재일 2013-11-05 19면
스크랩버튼
통영 가는 길이 설레는 건 백석 시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전에 통영을 찾았을 때는 수많은 여행 목적 중에 백석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통영 출신이 아닌 백석에게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할 만큼 다른 예술인들의 흔적과 볼거리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영 천희(처녀)`란`을 사랑한 시인이 통영과 관계된 시편을 여럿 남겼다는 사연을 안 이상 여행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의 아이돌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모던 보이` 백석은 시도 잘 썼지만 로맨스 또한 다양했다. 그 중 통영에 관한 시편들에 나타난 시인의 호흡법은 애절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백석이 `란(蘭)`을 만난 건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였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통영 출신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서 그녀를 소개받았다. 란을 만나러 세 번이나 통영을 방문했지만 끝내 불발되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마지막 방문에서는 여자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몇 개월 뒤 란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 상대는 다름아닌 신현중이었다. 시인의 일방적 사랑의 대가치곤 잔인한 결말이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사랑 덕에 독자는 그의 시를 원 없이 누리게 되었다.

명정골 정당샘을 향하는 길목에 충렬사 계단이 있다. 그 돌계단에 앉아 백석은 날이 저물도록 사랑하는 이를 기다렸다. 혹시나 우물가에 빨래하러 오는 천희들 가운데 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발된 사랑의 통점으로 시인은 `통영`이란 제목의 시 세 편과 `남행시초` 연작 등을 남겼다. 못 이룬 사연으로 시인은 시를 남겼고, 훗날의 독자는 시간을 더듬어 제 맘에 단풍길을 낸다. `흰 바람벽` 앞의 시인이 되어 한없이 애잔해지는 것이다. `…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