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아이돌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모던 보이` 백석은 시도 잘 썼지만 로맨스 또한 다양했다. 그 중 통영에 관한 시편들에 나타난 시인의 호흡법은 애절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백석이 `란(蘭)`을 만난 건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였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통영 출신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서 그녀를 소개받았다. 란을 만나러 세 번이나 통영을 방문했지만 끝내 불발되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마지막 방문에서는 여자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몇 개월 뒤 란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 상대는 다름아닌 신현중이었다. 시인의 일방적 사랑의 대가치곤 잔인한 결말이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사랑 덕에 독자는 그의 시를 원 없이 누리게 되었다.
명정골 정당샘을 향하는 길목에 충렬사 계단이 있다. 그 돌계단에 앉아 백석은 날이 저물도록 사랑하는 이를 기다렸다. 혹시나 우물가에 빨래하러 오는 천희들 가운데 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발된 사랑의 통점으로 시인은 `통영`이란 제목의 시 세 편과 `남행시초` 연작 등을 남겼다. 못 이룬 사연으로 시인은 시를 남겼고, 훗날의 독자는 시간을 더듬어 제 맘에 단풍길을 낸다. `흰 바람벽` 앞의 시인이 되어 한없이 애잔해지는 것이다. `…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