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무좀약을 바르면서 이런저런 단상이 스친다. 무좀균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 삼아도 좋을 위안이라고. 우리네 소소한 일상 자체가 무좀 앓는 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무좀 앓는 발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는 가운데 생겨난, 감당할 만한 모든 고충을 무좀균에 비유하고 싶다.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비의(秘義)는 가지고 산다. 아픔이나 상처의 옷을 입은 그것은 평소에는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표면으로 드러난다. 통풍에 문제가 없을 땐 잠잠하던 무좀균은 바람 쐬어 주지 않고 꼭꼭 싸맬 때 스멀스멀 피어나 발가락 사이를 갉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무좀균이 생긴다. 그때 위로라는 약을 발라 상처를 달래는데 금세 낫는다. 그렇다고 무좀균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숨어들었을 뿐인 이때의 무좀균은 발이 발로 단련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 장치로 기능하니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다.
그 어떤 약점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이란 없다. 산다는 건 환희라는 날개옷을 걸칠 때보다 고통이라는 갑옷을 두를 때가 더 많다. 수고로운 갑옷의 시간을 무좀 앓는 발이라 쳐두자. 그 성가신 쓰라림이 가슴 한켠을 찢어대기도 하겠지만 그건 모두 견뎌낼 만한 것들이다. 따라서 박멸할 필요도 없다. 혹시라도 완전히 없애버린 평범한 상처 그 자리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나 번민이 들어찬다면 그보다 낭패스런 일도 없을 것이니.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