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상담 내방자 중에 엠마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광장 공포증 환자였다. 엠마는 특히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를 열두 살 때 옷가게에 들렀을 때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를 도망쳐 나온 기억이 있는데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때 프로이트는 엠마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알아낸다. 여덟 살 때 어떤 가게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경험이다. 웃으며 옷 위로 추행하던 주인의 기억을 엠마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덟 살은 성 정체성에 대해서 신념을 갖기엔 어린 나이였기에 그녀에게 그 사건은 애매한 그 무엇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잠재된 그 은폐 기억은 유사 사건을 만나 엠마의 의식을 괴롭혔던 것이다. 엠마에게 성추행 사건과 옷가게 사건은 유사점을 지닌다. 둘 다 옷과 관계있는데다 둘 다 사람들이 웃었다.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엠마는 최초의 나쁜 기억인 여덟 살 때 일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는다. 최초 경험이 강렬하거나 나쁜 경험이 누적되면 잠재된 마음병이 된다. 그것은 유사 경험을 만나 뭉근한 아픔이 되어 한 영혼을 괴롭힌다. 그것이 트라우마다. 트라우마 없는 삶은 없다. 슬프거나 아픈 그것이 단단한 환희로 거듭날지 지속되는 부정의 정서로 남을지는 개별자가 처한 상황이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