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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된 상처, 트라우마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0-25 02:01 게재일 2013-10-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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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폭력에 노출된 어린 제제를 격하게 공감해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만의 장미꽃을 위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했던 `어린왕자`의 심적 번민이 제 것인양 안타까워하는 것 등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경험의 유사도가 높은 장면에서 독자의 기억은 쉽게 파문을 일으킨다. 터진 포대에서 밀가루가 흩어지듯이 아픔의 분자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개별적으로 축적된, 이러한 통점의 체험들은 유사 경험을 통해 기어이 심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프로이트의 상담 내방자 중에 엠마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광장 공포증 환자였다. 엠마는 특히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를 열두 살 때 옷가게에 들렀을 때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를 도망쳐 나온 기억이 있는데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때 프로이트는 엠마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알아낸다. 여덟 살 때 어떤 가게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경험이다. 웃으며 옷 위로 추행하던 주인의 기억을 엠마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덟 살은 성 정체성에 대해서 신념을 갖기엔 어린 나이였기에 그녀에게 그 사건은 애매한 그 무엇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잠재된 그 은폐 기억은 유사 사건을 만나 엠마의 의식을 괴롭혔던 것이다. 엠마에게 성추행 사건과 옷가게 사건은 유사점을 지닌다. 둘 다 옷과 관계있는데다 둘 다 사람들이 웃었다.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엠마는 최초의 나쁜 기억인 여덟 살 때 일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단순한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는다. 최초 경험이 강렬하거나 나쁜 경험이 누적되면 잠재된 마음병이 된다. 그것은 유사 경험을 만나 뭉근한 아픔이 되어 한 영혼을 괴롭힌다. 그것이 트라우마다. 트라우마 없는 삶은 없다. 슬프거나 아픈 그것이 단단한 환희로 거듭날지 지속되는 부정의 정서로 남을지는 개별자가 처한 상황이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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