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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적 전환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0-24 02:01 게재일 2013-10-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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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다면 내 개인사엔 `알바트로스적 전환`이 있었다. 이 말은 내가 지어냈다. 어리바리한 나에 비해 독서로 무장한 후배는 세상을 향한 시니컬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 그미는 랭보와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을 좋아했는데 치기로서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 그런 시인들의 성향을 좇았다. 보들레르가 그랬던 것처럼 시니컬한 눈으로 사물을 대했으며 세속적인 부르주아 근성을 혐오했다. 그미가 가장 못 견뎌 한 것은 편안한 정신이었다. 그미는 고매하고 피로한 지적 노동자를 자처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내게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고, 선하고, 밝고, 맑고, 소박한 것이어야 온당했다. 추하고, 악하고, 어둡고, 흐리고, 화려한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들이었다. 이유 불문한 당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후배의 사고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사유의 빈곤과 약점을 포착하고 세뇌하는 그미의 눈썰미가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대상을 선명하고 명쾌하게 보는 그미의 통찰력이 부러웠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온 우주를 꿰뚫는 듯한 그 모습을 나는 높이 샀고 내 사유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무 남다르고 앞서가는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기 마련이다. 보들레르의 시`알바트로스`를 원어로 읽던 그미는 그야말로 고독한 큰새였다. 거대 알바트로스도 선원에게 잡힌 신세면 고역을 면치 못한다. 성치 못한 몸으로 거대 날개를 질질 끌어야 하고 선원들의 담뱃불에 부리 지짐을 당하기도 한다. 고매한 영혼인 알바트로스는 평범한 선원들 앞에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보들레르는 시인인 자신의 운명으로 치환했겠는가. 지상으로 내몰린 남다른 생각의 소유자들은 운명적 고난자들이지만 타고난 개척자이기도 하다. 우뚝한 새가 평범함의 지상에 유배당했을 때 겪을 가혹한 정신의 웃자람을 그미는 태연히 즐겼고 나는 그것을 부러워했다.

보들레르 시를 다시 꺼내 읽는 밤, 자꾸만 옛 생각이 난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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