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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방해꾼 모성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10-23 02:01 게재일 2013-10-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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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자식은 독립한 것일까? 학업, 취업, 결혼 등의 이유로 자녀들은 일정 기간이 되면 부모로부터 떨어져나간다. 누가 봐도 독립이라 봐줄 만하지만 실은 이것은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독립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홀로서기와는 한참 멀다.

아침저녁으로 체감 온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간절기 겉옷이 필요할 터인데도 자식에게선 소식이 없다. 외로이 옷장에 걸린 자식의 외투를 보며 맘이 짠해진 엄마는 전화를 건다. 수업 중인지 받지 않는다. `옷 가지러 안 와?`문자를 보낸다. 두어 시간 지나도 답이 없다. `두꺼운 옷 갖다 줄까?` 그제야 답이 온다. `걱정 마세요. 좀 춥지만 견딜만해요. 주말에 가지러 갈게요.`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몹쓸 모성은 이제 `좀 춥지만`이란 자식의 문자에 자동으로 과민 반응하게 된다. 여간 추워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 것이라며 외투 없는 자식의 저녁 시간을 자청해서 자책한다. 그 밤에 외투를 들고 쫓아갈 판이다.

정서적, 객관적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는 아버지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주책을 떠`는 이런 모성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견딜 만하다니 주말까지 참으면 될 것이고 그도 아니게 급하면 한 벌 사 입겠지. 다 큰 녀석이 제 앞가림도 못할까봐 걱정이냐고 짐짓 무관심을 가장한 위악을 떤다.

흔히 볼 수 있는 집안 풍경이다. 다정도 병인양이라고 엄마들의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 가만 보면 자식은 심리적, 정서적으로 분리될 준비가 되어 있거나 무덤덤한데 그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부모, 그것도 엄마 쪽이다.

엄마가 노심초사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다급하지 않으며 엄마가 애면글면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힘들지도 않다. 자식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크고 앞서 간다. 뒷북치는 건 엄마 쪽이고 독립 못하는 것도 자식이 아니라 엄마다. 자식의 정서적, 심리적 홀로서기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엄마 스스로다. 자식에게서 한 발자국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 그게 모성의 속성인 걸 어쩌란 말이냐.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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