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던가, 가족 여행 중 차 안에서 딸아이의 권유로 접하게 된 영화였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어느 순간 장면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건 뭐지?`하는 야릇하고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은 신선함의 기운이었다. 감성적인 코드의 이야기도 다큐멘터리 식으로 이해하는 부류인 내가 온전히 가슴으로 영화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나이 들면 유치해지고 느슨해진다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20년의 시간차를 두고 샹륜과 샤오위는 첫사랑을 앓는다. 그들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은 피아노이다. 샹륜은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 샤오위를 처음 만나게 된다. 그때 샤오위가 연주한 곡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는 셈이다. 그 비밀은 샤오위가 샹륜보다 이십 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 피아노를 통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지만, 샤오위로서는 자신이 처음 본 사람과만 만날 수 있다. 샤오위가 볼 수 있는 첫 대상이 늘 샹륜이라는 것이 보장되지 않기에 그들의 사랑은 오해와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잘 알려진 `피아노 배틀` 장면은 연주의 예술성을 떠나 영화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큰 동력이 되어준다. 쇼팽의 연습곡과 왈츠 등의 연주가 애틋한 시간차 만남의 매개물로 활용되는데, 격정적으로 빨라지는 연주 장면은 내재된 첫사랑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 같아 관객도 덩달아 호흡이 가빠진다. 가을 깊어질수록 순정한 가슴이 요청하는 격정의 한 순간에 초대받고 싶어진다. 그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소년소녀처럼 시간 여행을 떠날 수만 있다면!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