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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누더기로 변해간다

등록일 2013-10-08 02:01 게재일 2013-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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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에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했으니 올해는 창제 567년이 된다. 우리글은 창제 후 `정음` `언문` `암클`등으로 낮춰 불리다가 1910년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해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없어졌지만 우리글만은 `독립`을 획득한 것이다. “자기 글과 말이 있는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란 말을 실증한 일이다. 1926년 처음 `한글날`이 제정됐으니, 이는 훈민정음이 `언문` `암클`에서 벗어나 가장 과학적인 글임을 과시하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그 날을 `가갸날`이라 했다. 그런데 지난 23년간 한글날은 공휴일이 아니고 `그냥 무심히 넘어가는 날`이었는데,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이 됐다. “한글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 조치”였다.

지금 한국어는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언어란 국력에 비례적인 전파력을 가지는데, 한국의 국력에 따라 한국어를 배우는 나라가 늘어난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한국어 능력시험`에 응시하는 인구가 급속히 불어나고있다. 외국 관광지에는 한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가게 점원이 필수적으로 배치돼 있다. 말은 있으나 글이 없는 종족도 세계 곳곳에 있는데, 한글을 `가장 배우기 쉬운 글자`라 해서 `자기 고유의 말을 한글로 표기하는 법`을 배우는 곳도 동남아지역에 있다. 한글에 대해 우리 스스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나타난다.

올해는 한글에 관한 저서가 3권이나 발간됐다. 우리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 한글임을 재인식하자는 뜻이 읽혀진다. 김주원 교수의 `훈민정음`, 홍윤표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장의 `한글이야기`, 역사저술가 이상각 씨의 `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최근 출간됐다. 그 중에서 `한글만세….`는 1942~1943년 사이에 일어났던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루고 있다. 33인의 한글학자들이 감옥에 갇혀 굶주림과 고문을 이겨내며 목숨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켜냈던 그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말과 글 수호 투쟁이 가장 성공적이고 빛나는 독립운동이었다”고 강조한다.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쳤던 그 일제 강점기에 한글학자들은 죽기로 작정하고, `한글사전`원고를 집필하고 지켜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피의 역사`를 거쳐온 우리글이 지금 누더기로 변해간다. 맞춤법에 틀린 글자를 예사로 쓰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외래어 외국어를 남발하는 언어사대주의가 판을 치고, 이른바 `인터넷언어`라 해서 국적불명의 낱말들이 난장판을 만든다. 상점 간판을 외국어로 써 붙여야 세련돼 보인다 해서 순수 우리말 간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북이 아직은 불화하고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한 민족이라는 점만은 변할 수 없으니, 통일의 매개체가 한글임을 안다면 결코 한글을 욕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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