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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시나리오 만나 영화 복귀”

연합뉴스
등록일 2013-09-26 02:01 게재일 2013-09-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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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2년만에 `소원` 선보여… 내달 2일 개봉
“훌륭한 시나리오를 만나게 돼서 아무런 기획이나 준비 없이 흐르는대로 몸을 맡겼습니다. 맑은 마음으로 복귀하게 된 거예요.”

한국에서 감독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영화 `왕의 남자`(2005)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한국영화에 큰 족적을 남긴 이준익(54·사진) 감독이 2011년 초 돌연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 파장은 꽤 컸다. `평양성`의 흥행 실패 때문이었지만, `왕의 남자`나 `라디오 스타` 같은 그의 명작들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이후 2년간 침묵을 지키던 그가 올해 초 새 영화 `소원`의 연출을 맡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년이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길지 않은 공백이지만, 영화계와 팬들이 느끼는 반가움은 컸다.

“`복귀`치곤 짧잖아요.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다시 하고 싶어졌어요. 하던 짓이 도둑질이라고(웃음).”

오는 10월2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은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운을 뗐다.

무엇보다 `소원`의 시나리오가 그를 현장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소원`은 동네 아저씨로부터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아이 소원이와 그 가족이 서로 보듬으며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다.

“`평양성` 이후 나는 `놈팡이`가 되겠다고 선언했죠. `평양성`까지 일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 최대한 일을 안 하려고 노력했고 어영부영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이 시나리오 제안을 받았죠. 한 번에 절대 못 읽는 시나리오였어요. 소원이가 그런 일을 당하는 장면이나 병원 장면은 (마음이) 아파서 절대 볼 수가 없었어요. 쉬었다가 다시 보고 하기를 반복했죠. 그런 거부감이 있는 소재잖아요. 다 읽고 나서는 흥행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용의 가치로 판단하자고 생각해봤어요. 그렇다면 이런 영화는 꼭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고 그는 얘기했다.

“그런 소재로 영화를 찍으면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거 아니냐는 댓글도 많이 봤는데, 가리고 피하는 건 그동안 계속 해왔잖아요. 그런데 그래서 나아졌느냐는 거죠. 영화를 찍던 중에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탈무드 구절을 올린 걸 봤는데,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는 말이었어요. 완전히 와 닿더군요. 가슴 아픈 상처의 피해자가 그 상처를 이겨낼 것인가, 상처에 무릎 꿇을 것인가. 잘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수가 어딨겠어요.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이길까를 고민하는 영화입니다. 그동안 나온 성폭행 소재 영화들이 가해자에 대한 응징의 강도를 주장했다면, 나는 다른 걸 얘기한 거예요. 다른 문을 열자는 거예요. 소원이가 이기길 바란 거죠.”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한 장면 한 장면을 신중하게 찍었다며 영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에도 조심해서 써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조금이라도 불손한 태도가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다짐했고 공손하고 정중하게 찍으려고 매 순간 노력했습니다. 이런 소재를 팔아먹는다는 얘길 들을까봐 현실과 관련한 이야기는 영화 밖에서 절대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영화에서 아동성폭행이란 말도 최대한 빼려고 했고요. 사실 영화 찍느라 조사를 많이 했는데, 그런 내용을 절대 입 밖에 낼 순 없습니다.”

영화를 찍는 내내 그 역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찍으면서 울다 울다 정말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어요. 올해 1월1일부터 9-10개월 동안을 이 감정을 물고 있는 거예요. 인터뷰하다가도 막 감정이 올라와요. 엄지원(소원이 엄마 역)도 울고 설경구(소원이 아빠 역)도 울고 다 그랬어요.”

하지만, 그는 영화 안에는 최대한 감정의 자극을 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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