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부터 9월 하순까지 왜관 낙동강과 포항 형산강과 영천, 마산 등지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그 중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한반도 전체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판국이었다. 특히 왜관 다부동전투와 포항 형산강의 학도의용군의 항전은 치열했다. 당시 북한군 14개 사단은 이 지역에서 총공세를 펼쳤고, 우리는 죽음으로 강을 지켰다. 그 덕분에 맥아드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고, 그 후 보급로가 끊어진 북한군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6·25는 몇가지 교훈을 준다. 낙동강평화축전은 그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첫째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는 점이다. 50년대 당시 우리에게는 재대로 된 국군이 없었다. 미군이 지원한 재래식 무기에 대포 몇 문이 전부였다. 약점 투성이 한국은 북한의 오판을 불러왔다.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그대로 적화통일 됐을 위기였다. 강력한 대응무기와 투철한 안보의식 없는 상황은 전쟁을 불러들일 유인요소였던 것이다.
둘째 교훈은 `화해분위기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6·25당시는 남북 분단상황속에서도 평화분위기를 조성했었다. 민족주의자들이 활발히 남북교섭을 벌이고,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마저 해제되었으며, 국군들은 휴일을 맞아 휴가분위기에 취해 있었을 때 북한의 기습남침이 있었다. 월남전때 `구정 대공세`로 승기를 잡은 그 전술은 공산주의자들이 잘 써먹는 수법이다. 구정(舊正)을 맞아 느슨한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월맹군은 전면적인 대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개성공단,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을 두고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
세째 교훈은 `이적단체 근절`이다. 6·25 당시에도 남쪽에 남로당이 준동하고 있었다. 지금도 좌파정권 10년간 길러진 종북혁명세력이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석기 사건에서 보듯이 이들은 북의 남침이 있을 때 내응(內應)할 무기들이다. 이들은 지금 정당이나 공공단체까지 만들어서 국민혈세를 지원받으며 자라고 있다. 이적단체를 먹여살리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다. 암덩어리를 뱃속에 담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적화통일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 법치국가의 약점과 맹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