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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세계평화대축전의 의미

등록일 2013-09-25 02:01 게재일 2013-09-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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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제1회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이 칠곡군 왜관읍 칠곡보 생태공원 일원에서 5일간 열렸고, 낙동강 전투 전승기념행사도 병행했다. 6·25사변 중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전투였다. 당시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죽음으로 낙동강을 사수하라!”고 명령했고, 한국군 사령관 백선엽 장군 역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목숨보다 조국이 먼저다”라고 명령한 것을 훌륭히 이행한 결과였다.

1950년 8월부터 9월 하순까지 왜관 낙동강과 포항 형산강과 영천, 마산 등지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그 중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한반도 전체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판국이었다. 특히 왜관 다부동전투와 포항 형산강의 학도의용군의 항전은 치열했다. 당시 북한군 14개 사단은 이 지역에서 총공세를 펼쳤고, 우리는 죽음으로 강을 지켰다. 그 덕분에 맥아드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고, 그 후 보급로가 끊어진 북한군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6·25는 몇가지 교훈을 준다. 낙동강평화축전은 그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첫째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는 점이다. 50년대 당시 우리에게는 재대로 된 국군이 없었다. 미군이 지원한 재래식 무기에 대포 몇 문이 전부였다. 약점 투성이 한국은 북한의 오판을 불러왔다.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그대로 적화통일 됐을 위기였다. 강력한 대응무기와 투철한 안보의식 없는 상황은 전쟁을 불러들일 유인요소였던 것이다.

둘째 교훈은 `화해분위기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6·25당시는 남북 분단상황속에서도 평화분위기를 조성했었다. 민족주의자들이 활발히 남북교섭을 벌이고,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마저 해제되었으며, 국군들은 휴일을 맞아 휴가분위기에 취해 있었을 때 북한의 기습남침이 있었다. 월남전때 `구정 대공세`로 승기를 잡은 그 전술은 공산주의자들이 잘 써먹는 수법이다. 구정(舊正)을 맞아 느슨한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월맹군은 전면적인 대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개성공단,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을 두고 대화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지만, 결코 방심해선 안된다.

세째 교훈은 `이적단체 근절`이다. 6·25 당시에도 남쪽에 남로당이 준동하고 있었다. 지금도 좌파정권 10년간 길러진 종북혁명세력이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석기 사건에서 보듯이 이들은 북의 남침이 있을 때 내응(內應)할 무기들이다. 이들은 지금 정당이나 공공단체까지 만들어서 국민혈세를 지원받으며 자라고 있다. 이적단체를 먹여살리는 이상한 나라가 한국이다. 암덩어리를 뱃속에 담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적화통일세력과 대치하고 있는 지금, 법치국가의 약점과 맹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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