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민주화라는 말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5-24 00:02 게재일 2013-05-24 23면
스크랩버튼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

아이돌 그룹의 모 멤버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뱉은 한 마디 말 때문에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단다. 의심할 바 없이 기성세대인 나는 논리적 오류로 이어진 저 말 뜻도 모르겠고, 왜 사람들이 흥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개성을 존중하는데 민주화시키지 않는다`는 말장난을 해석하느라 골머리만 아팠다.

추이를 관망한 이제야 무슨 말인지 감을 잡겠다. 민주화라는 말이 특정 집단에겐 그 본래적 의미를 벗어나 부정적이고 치졸한 의미로 쓰인단다. `민주적으로 되어 가는 것. 또는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란 숭고하고 긍정의 의미인 `민주화`라는 말이 극우 성향을 지향하는 한 사이트에서는 그 반대의 뜻으로 사용되는 모양이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시비걸때 `민주화`라는 말을 쓴단다. 조롱의 의미로 `저 녀석 민주화 당했네`, `이 자식 민주화시켜야 겠어` 라고 하거나, 네티즌 글을 `비추천`할 때도 `민주화`란 말로 대신한단다.

독재자를 옹호하고, 민주화 운동은 조롱거리로 전락시키고, 인권 유린마저 유희로 생각하는 집단들의 사이트가 활발히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상 자체가 민주화된 사회를 증명하고도 남는데, 왜 그들은 비겁하게 `민주화`라는 말을 그토록 폄훼할까. 온갖 불합리와 각종 비리와 말할 수 없는 비열함의 세계를 엮어가는 기성의 행태를 보면서 그들은 너무 쉽게 생을 환멸이나 유희의 장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화이건만 왜곡된 그것은 이제 내 편이 아니거나 내 뜻과 다른 것일 때 비하하는 말로 전락하게 생겼다.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실체는 전혀 민주화되지 않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몸짓은 전혀 정의롭지 않은 현실이 그들을 저토록 극단적인 생각의 장으로 내몰게 한 건 아닐까. 숭고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기성의 한계에 대한 반발이 이런 현상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곱씹을수록 머리만 무거워진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