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상속의 그대` 강진아 감독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진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거절을 당하거나 자기 의지가 아닌 이별을 경험할때 지독하게 아파하잖아요. 그렇게 남은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영화 `환상속의 그대`를 연출한 강진아(32·사진) 감독은 영화를 만든 의도를 이렇게 정리했다.
영화는 사고로 죽은 여자 `차경`(한예리 분)과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남자친구 `혁근`(이희준), 차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차경의 죽음에 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기옥`(이영진)의 이야기를 판타지를 녹여 그렸다. 차경은 죽은 지 1년이 지나서도 혁근과 기옥의 환상 속에 계속 나타나 주위를 맴돈다. 이들의 이별은 어렵기만 하다.
이 영화는 2010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단편 `백년해로외전`을 장편으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됐다. 영화는 오는 16일 개봉한다.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주에서 최근 감독을 만났다.
“`백년해로외전`에 대해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런데 주인공인 `혁근`을 생각해보니 그 상태로는 건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애도와 상실에 관한 영화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영화를 내가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어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게 삶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 핵심에 닿아봐요, 그리고 거기서 이제 그만 빠져나와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부산 출신인 그는 그런 생각을 평소에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이별한 친구나 사별한 사람들을 만나면 고민 상담도 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은데, 제 성격상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해요. 그래서 집에 오면 후회하고 끙끙 앓거든요. 문자나 전화도 잘 못하고. 이런 내 기질이 싫고 답답하고 사람 구실을 잘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영화로 내가 아는 사람들한테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위로받은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극중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인 혁근과 기옥의 관계에는 특히 감독의 그런 마음이 잘 녹아있다.
“단편은 혁근이 죽은 차경이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얘기를 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혼자서는 건강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통해 받은 상실감은 사람을 통해서만 나아질 수 있는 거니까 기옥이란 새로운 인물을 넣어서 혁근이를 돕게 했죠.”
영화에는 죽은 사람인 차경이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내가 죽고 나서 존재하지 않을 때 내 상태가 어떠할 것이며, 그들한테 남은 나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 모두 죽지만 그전엔 죽는 걸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생각하다 보면 많은 갈래로 가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면박을 주지만, 저는 내 죽음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야 다른 사람의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이 좀 어두워 보일 순 있지만, 삶이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도 있어요. 계절 변화라든지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더 느끼죠.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영화에 주요 상징으로 나오는 돌고래는 죽은 사람을 위한 위로라고 했다.
“죽은 차경이의 안녕이 확보되기 전까진 혁근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경이가 죽어서도 괜찮을 수 있는 소재를 주고 싶었는데, 큰 동물과 무리지어 살면 안락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죠. 단편인 `백년해로외전`에선 `코끼리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넣었는데, 지금은 큰 동물 중에 돌고래가 가장 좋아서 차경이가 돌고래를 만나도록 했죠.”
이 영화는 인천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각각 5천만 원씩 1억 원을 지원받는 등 총 1억6천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돌고래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수중 촬영, 집 세트 붕괴 장면 등은 그런 작은 예산에 비해서는 시각적으로 화려한 장면들이 많다.
“그런 부분 때문에 `때깔만 좋다`는 평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소리 듣는 걸 싫어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비주얼에 집착을 하나 봐요. 감정을 시각화하는 데 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미술(공부)을 조금 오래 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되나 봐요.”
그는 홍익대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때 영화 만드는 소모임을 접한 이후 영화에 빠져들었고 대학을 졸업한뒤에는 `크라켄`이라는 회사를 차려 영화 예고편 제작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틈이 날 때마다 단편영화를 만들게 됐고 좀 더 공부해보겠다는 욕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밟았다. 이번 영화는 그 졸업작품이다. “고등학교 때 내가 미술천재가 아니란 걸 알게 됐고 엄청나게 노력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에 가보니 다들 즐기고 있었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지더라고요. 마치 사형선고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영화를 해보니 워낙 많은 사람이 같이하는 일이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가 와주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만들면서 다시 노력의 중요성을 느껴서 고마웠고 그러면서 더 영화에 집착하기 시작했죠(웃음).”
그는 “앞으로 영화로 만들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