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하고 함께일 필요는 없어. 우인(友人)이 제격이야. 단 둘 보다는 한 차 가득 젖은 빨래처럼 출렁댈수록 좋은 거지. 단, 운행 속도는 줄여야지. 미친놈 고쟁이 자락 빠진 듯 더러워진 흙신발로 발판을 뭉개진 않았으면 좋겠어. 저 산허리만 지나면 무중력 상태인 안개의 나라거든. 거기선 흙신발일수록 환영 받아. 역맛살의 혐의가 짙을수록 외계인이나 신선의 대열에 선발되기가 쉽거든.
드디어 안개나라에 잠입했어. 여기선 겨드랑이에 숨겨둔 저마다의 이름 하나 발설할수록 매혹적이지. 젖은 추억을 팔거나 절벽 같은 시간을 풀어도 괜찮아. 지독히도 은밀한 한 생애를 고해하고 공유한 공모자가 되는 순간이야. 원래 사는 건 시시하고, 막막한 거거든. 그 비루한 삶을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기 위해 안개비를 꿈꾸는 거지. 말할 수 없는 내 불안과 네 공포가 두렵지 않은 자 어디 있겠어. 점점 푸르러가는 계절에 걸맞게 그것들도 증식하지. 진초록 짙어오기 전, 한 호흡을 갈무리 하듯 빗줄기 머금은 저 산정의 밀지(密地)를 만나러 가는 거지. 선계에 선뜩 내닫지 못한 창밖으로 빗소리 들려오고, 산 높고 깊은 곳의 안개는 제 겹을 늘여갔지.
환한 날의 밋밋한 우정보다 안개비 속의 축축한 인정은 다음 만남을 잡기에도 유리했어. 다음번엔 안개비 대신 솟구치는 물마루를 만나러 갈지도 몰라. 분수처럼 솟구치는 인공 물마루 넘어 햇살 받은 쌍무지개는 황홀한 바람을 닮았대. 벌써 그 장면이 어룽거려. 아쩜 사는 게 시시하고 막막할 때 아름드리 버짐나무 아래 섰던 그대들이 떠오를 거야. 그땐 이성을 버리고 오직 센티멘털의 전송법으로 편지를 쓰겠어. 그럼 된 거지. 뭘 더 바라겠어.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