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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들

등록일 2013-04-24 00:17 게재일 2013-04-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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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진 규
앞 뜨락 꽃사과 곁에 한 무더기, 뒷 뜨락 장독대 앞에 한 무더기 수염도 실하게 꽃잎 도톰하게 튼실한 할미꽃들 어머니 무덤가에 두 가닥 겨우 솟은 할미꽃이 애처로워 장독대 할미꽃 세 가닥 덜어내 보태드렸는데 양달도 소용없어라 오늘 올라가 보니 역시나 애처로운 편으로 고개 떨구고 있었다 모두 제자리가 다 따로 있는 법, 옮겨가면 몸살을 앓는 법 오늘도 눈으로 깨달았다 연전 내게 옮겨와 얼마나 응달로 숨어 몸살 앓았을까 이젠 내 곁을 떠나 튼실해졌을 터, 한 무더기 이별을 내가 몸살하고 있노니 연전의 내 할미꽃이여

아무리 미미한 생명체일지라도 생존하는데는 일정한 방식과 여건이 있어야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 어머니 무덤가에서 옮겨다 심은 할미꽃들이 고개를 떨구고 시들한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우주의 모든 것들은 모두 제자리가 따로 있다 라는 진리를 툭 던져주고 있다. 아무리 햇볕이 잘드는 양달이라 할지라도 소용없는 할미꽃들. 응달, 그늘에 숨어 고개숙이고 사는 것이 그들 생존의 방식임을 통해 이런 삶의 양식을 우리게 건내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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