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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성, 그가 포항출신이라서 자랑스럽다

등록일 2013-04-08 00:05 게재일 2013-04-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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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포항에 경사스런 승전보가 전해졌다. 포항 출신 프로골퍼 최호성(40)이 원아시아투어 겸 일본프로골프(JGTO)투어인 인도네시아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포항시민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성원을 보냈다. 그의 우승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우승이 파란만장한 굴곡 속에서 거둔 인간승리이자 장애를 극복했기에 더욱 값진 것이다. 그가 포항 출신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그의 별명은 `잡초`다. 이번 우승으로 그의 잡초 같은 골프인생이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1리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장기초교, 장기중학교를 나온 후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20살 때 한 선반공장에서 일하다 오른손 엄지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일반적으로 볼 때 그는 골프선수가 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가 그런 장애를 딛고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2살 때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성실히 일하다보니 일년 뒤 영업직 사원으로 특채되면서 골프입문의 계기가 됐다. 골프장 사장이 “영업사원도 골프를 알아야 한다”며 골프를 권한 것이다. 그의 나이 25살 때인 1997년 늦깎이로 골프채를 잡았다. 시작 2년 만에 그는 세미프로에 합격(1999년)했고, 다시 2년 뒤인 지난 2001년 꿈에도 그리던 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그야말로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골퍼에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방향타와 같은 것이다. 그걸 잃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프로테스트를 막상 통과했으나 가난한 프로골퍼 생활의 연속이었다. 독학으로 익힌 골프가 쉽게 통할 리 없었다. 정밀해야 할 샷의 방향과 힘을 조절해주는 엄지손가락이 늘 말썽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첫 우승은 데뷔 5년 만인 2008년 하나투어 챔피언십. 그의 나이 35살에 그토록 기다리던 첫 우승을 일궈냈다. 김대현과 연장 접전 끝에 거둔 승리여서 당시 늦깎이 골퍼의 성공스토리가 화제가 됐었다.

그의 승리 뒤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장인어른이 있었다. 장인 황용훈(60)씨는 그의 전용캐디다. 장인이 처음 캐디가 된 것은 지난 2007년 금강산 아난티 골프장에서 열린 NH농협오픈 때였다. 선대 고향이 평북 정주인 장인에게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시지 않겠느냐”고 권한 게 시작이었다. 그 후 장인은 사업도 아들에게 넘기고 오로지 사위의 캐디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18만 달러(약 2억원)를 받아 단숨에 톱클래스 반열에 올라섰다.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이자 해외 투어 첫 우승이다. 그의 부모님은 지금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1리에 살고 있다. 일본 프로투어에서도 당당히 포항의 이름을 떨쳐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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