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눈에 띄는 합의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제기된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과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를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국정조사의 실시 시기는 검찰 수사가 완료된 직후라고 못박았다. 아직도 경찰 수사단계에 있는 이 사건이 과연 언제쯤 검찰로 넘어가 수사가 끝날지도 모르는 채 선언적 규정만 담은 셈이 됐다.
게다가 검찰수사 직후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합의는 사법기관인 검찰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셈이 됐다. 아무리 검찰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고 해도, 입법기관의 구성원들이 사법기관의 중추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합의를 한 것은 삼권분립의 정신에 비추어도 지나친 처사다. 검찰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국정조사가 불필요한 수사결과를 내놓기를 바랄 뿐이다.
또 전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를 보고, 조사가 미흡할 경우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합의사항도 논란거리다. 감사원 조사결과가 충분한지 아니면 미흡한지 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를 놓고 여야가 맞설 가능성을 열어놓은 어설픈 합의다.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관련해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안을 3월 임시국회에서 발의해 윤리특위에서 심사토록 한 것도 수면 아래 잠복해 온 이념논쟁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5년의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이념논쟁이 벌어지면 행여 국정의 추동력을 잃고 헤매지 않을까 걱정이다.
끝으로 오는 6월까지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겠다는 합의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청문 작업은 마무리 단계다. 올해 안에는 추가적인 청문회 수요 자체가 없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선진제도와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합리적으로 접목한 제도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회와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청문회법을 만들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여야가 만들어낸 `정치적 합의`가 이처럼 허점 투성이다보니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여야는 이번 합의가 비록 허술하지만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합의정신을 지켜 또 다른 정쟁으로 번지지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