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포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은 17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70대 주민 1명이 숨지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가옥 46채가 불에 타 118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산림 5㏊가 소실됐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발생한 산불로 시가지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며,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도시기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한 엄청난 위기 상황이 닥쳤지만 포항시를 비롯한 행정기관은 위기 대응 능력측면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냈다. 포항시와 경북도가 산불 상황실을 각기 따로 마련하면서 공조체계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서 산불이 발생하자 포항시는 학산동 포항고등학교에, 경북도는 용흥동 대흥초등학교에 별도의 재난지휘소를 마련했다. 포항시는 시청소속 공무원 1천500명과 경찰 830명, 군부대 600명, 산불감시원 106명 등 3천여명으로 구성된 산불진화팀을 만들어 진화작업을 벌였고, 경북도는 소방대와 의용소방대 등 1천50여명의 인원을 동원해 별도의 진화활동을 벌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화팀 간의 동선이 겹쳐 인원이 집중된 구역이 발생했고, 인원배치가 전혀 되지 않은 곳도 발생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이런 큰 화재가 발생하면 당연히 공무원, 소방, 경찰, 군이 힘을 모아야 하는데, 포항시가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경북도 소방본부의 지휘차량과 함께 이동해 움직이는 상황실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라면서 지난 9일 오후 10시께 시·도 상황실의 분리를 파악하고 즉시 포항고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포항의 산불 재앙 사태를 진두 지휘해야할 콘트롤타워가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되면서 위기관리 매뉴얼과 지휘체계를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각종 위기 상황에서 지휘부의 기능은 중차대하다. 지휘부가 두 갈래로 나눠져 제각각의 의사결정을 했다면 지방정부의 위기대응능력에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위 기관인 포항시가 경북도의 행정 행위의 범위를 넘는 월권을 했거나 아니면 경북도가 상위기관으로서 제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 공공기관의 중요한 책무 중에 하나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다. 따라서 이번 산불에서 지휘부 이원화로 공공기관이 책무를 게을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물론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도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