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더는 연습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2-19 00:20 게재일 2013-02-19 19면
스크랩버튼
소학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 하는 것이 그 첫 번째요, 부모형제의 권세를 빌어 좋은 벼슬을 하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며, 재능이 높아 문장을 잘하는 것이 세 번째 불행이다.

소학 말씀대로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세 가지 불행의 이유에 하나도 닿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때론 불행해도 좋으니 저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해 봤으면 하는 맘이 든다. 특히 세 번째 구절,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룰 수만 있다면 불행이 오기 전 자기 관리를 잘 해 불행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되지, 하는 싱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옛말 그르지 않다고 전적으로 소학의 저 말씀을 신뢰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편한 일상은 누릴지 몰라도 정신적 황폐를 곁에 두기 쉽다. 이른 성공을 이룬 예술가들이 이 요절하거나, 말로가 좋지 않은 경우가 하 얼마이던가. 집안 배경 덕에 이룬 표면적 성공 역시 본받을만한 건 못된다. 재벌가의 볼썽사나운 이권 싸움이 가십거리가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문장 재주가 좋아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면 수양에 소홀한 채 자신의 능력에만 기댈 경우 시샘의 상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이제껏 내 허영심 때문에 문장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픈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이룬 적 없는 그 욕심을 내려놓도록 연습해야겠다. 맛 나는 요리엔 많은 재료가 필요한 게 아니다. 훌륭한 맛을 내려고 이것저것 재료 욕심을 내다보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재료라는 욕심을 뺄수록, 잘 쓰겠다는 허영을 버릴수록 원재료에 가까운 담백한 맛을 얻을 수 있다. 음식이든 글이든 더해서 얻어지는 맛보다는 덜어서 내는 맛이 더 진실에 가깝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