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하루 전에야 두 일정이 겹친다는 것을 알았다. 한심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둘 다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문학기행 중간에 순천까지 남편이 데리러 오는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만 소화하는 기행이 즐거울 리 없었다. 눈은 송광사 단풍에 머물렀건만 마음은 자책의 방망이질로 따끔거렸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다. 기숙사에서 급히 나오느라 아들은 속옷과 양말을 챙기지 못했다. 모전자전이다. 야무지지 못하고, 질질 흘리고, 잘 갈무리하지 못한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속옷 갈아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무룩하다. 이때를 대비했을까. 남편이 아이의 속옷과 양말을 내놓는다. 녀석의 얼굴이 환해진다. 면봉과 치실, 간식까지 꼼꼼히도 챙겨왔다.
남편의 준비성 하나 만은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니 단점이 없을 수 없다. 남편도 나만큼 약점이 있다. 소심하고, 잘 삐치는데다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면이 때론 이해가 안 되고 갑갑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칠칠치 못한 점을 커버하는 한, 그 약점은 큰 게 아닌 게 돼버린다.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어쩌랴. 내 허점은 잦고 드러나지만 그의 약점은 뭉근한데다 숨어 있으니.
부부는 서로 달라야 잘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허점투성이 내 기질을 남편이 공유하고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싫다. 갑갑하더라도 나와 다른 약점을 가진 상대가 훨씬 낫다. 다른 사람끼리 보듬고 살라고 조물주는 남녀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