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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배원의 순직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2-07-23 20:21 게재일 2012-07-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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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경기도 용인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집배원 두 사람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속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었다.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불어난 물이 길을 삼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 가던 20대 후반 차선우 우편집배원이 발을 헛디디며 급류에 휘말렸다. 그는 움켜쥐고 있던 우편물 8통을 동료에게 건넸다. 그중에는 한 기업이 외국 업체와 맺은 중요한 계약서도 있었다고 한다. 동료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그의 몸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집배원은 3일 뒤 한강 청담대교 남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순직한 지 5개월 만에 그의 죽음이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됐다. 지식경제부 산하 충청지방우정청은 차선우 집배원을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할 뜻을 밝혔다. 집배원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은 1884년 우정총국이 설립된 지 127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정부는 고인에게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 조성한 추모공원에도 추모비가 세워졌다. 한 동료 집배원은 “마지막까지 국민의 재산인 우편물을 지키려 했던 그의 투철한 사명감이 죽어서라도 위로받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며 “우리 집배원들이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삶의 애환들을 품고 하늘에서 동료들을 지켜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것이 공무원의 사명이요, 의무다. 잠시 머리 숙여 명복을 빌고 싶다. 29세 젊은 나이의 공무원 자세가 많은 공무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요즘 일부 공무원들의 부정으로 공직사회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국민들은 목에 힘을 주고 거드름 피우는 일부 공무원의 고자세 태도에도 너무 많이 실망해 왔다. 다산 정약용의 공무원 지침서인`목민심서`에서 공직자로서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을 수 십번 들었을테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겸손한 자세로 시민을 섬기고 봉사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다져보자.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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