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 알다시피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이었던 구양수는 글 잘 쓰는 방법으로 삼다(三多)를 들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이는 `과정'이나 `퇴고', `베끼기'를 보태기도 한다. 하지만 핵심은 백련자득(百鍊自得)이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다. 원래 백련자득은 검도에서 쓰이는 용어다. 거듭 단련한다는 뜻의 `백련(百鍊)'은 옛날 중국에 전해졌다는 명검(名劍)을 가리키기도 한다. 백련을 통해 명검이 나왔으니 명필도 백련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장자(莊子) 천도(天道) 편에 전하는 윤편(輪扁)의 일화는 백련자득의 좋은 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던 차에, 대청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던 윤편(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이 환공에게 무슨 책을 읽고 계시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금 성인(聖人)의 경전을 읽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이에 윤편이 다시 물었다. “그 책을 지은 성인은 아직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지” “그렇다면 지금 읽고 계시는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한 거로군요” 미천한 윤편으로부터 이 같은 불손한 말을 듣자, 환공은 크게 노했다. “네 이놈! 당장 그 같이 말한 이유를 말해보아라. 만약 네가 말을 돌리거나 허튼수작을 하면 네 목을 베어버리겠다” 그러자 윤편이 엎드려 말했다. “대왕이시여, 잠시 고정하소서. 비록 제가 수레바퀴나 만드는 천한 것이오나, 제가 아는 바퀴 만드는 것에 비유하여 대왕께 그같이 말한 이유를 사뢰겠나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설명해 나갔다.
“수레바퀴를 만들 때엔 칼을 너무 빨리하게 되면 힘은 덜 들지만 바퀴가 둥글지 않게 되고, 반대로 칼을 너무 느리게 하게 되면 바퀴는 둥글게 되지만 힘이 더 들게 됩니다. 그래서 바퀴를 만들 때는 칼이 너무 빠르지도, 혹은 느리지도 않게 스스로 속도를 터득해 자유자재로 손을 움직이는 것이 최상의 기술이지요. 그렇지만 이같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유자재로 칼을 쓰는 기술은, 제 하나 밖에 없는 자식 놈에게 여러 번 전해주려 했지만 아직까지도 어떻게 전해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이가 칠십이 됐지만 어쩔 수 없이 아직도 제 손으로 바퀴를 만들고 있습지요.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옛날 성인이 얻으신 대도(大道)도 말이나 글만으로는 전할 수 없음이 또한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소인이 감히 그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환공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서, 잡았던 책을 놓고 그 늙은 윤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자유자재로 칼 쓰는 기술'을 익히려면 윤편처럼 수십 년 부지런히 깎고 다듬어 보는 수밖에 없다. 그 오묘한 감(感)을 어찌 말과 글로 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부지런히 읽고 쓰고 다시 읽고 쓰면서 백련자득하는 수밖에.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그저 자신의 게으름을 경계하면서 부지런히 백련자득하면 누구나 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자정 넘어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면 듬성듬성 불 켜진 창이 보인다. 가끔 그 불빛 아래 누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해보는데 윤편처럼 부지런히 제 삶의 수레바퀴를 깎고 있을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누군가 붓 잘 쓰는 이가 있다면 `백련자득(百鍊自得)' 붓글씨 한 폭 얻어 교실에 걸어두고 싶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재잘거리는 소리가 벌써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