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 창작과 비평사 펴냄, 152쪽
`노동자 시인`의 상징적 존재로서 끊임없는 내적 성찰과 갱신을 통해 노동시의 진경을 펼쳐온 백무산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작과 비평사)`가 출간됐다.
이전 시집 `거대한 일상`에서 노동시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리며 뚜렷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백무산 시인은 2009년 오장환문학상과 임화문학예술상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의 삶과 노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성찰과 모색이 담긴 시편을 선보이며 부정을 껴안고 넘어서는 긍정의 시세계를 펼쳐보인다. 맑은 서정 속에 일상의 세목들을 바라보는 따듯한 연민의 눈길과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현실을 꿰뚫어보는 냉철한 시선이 견결한 목소리에 실려 초심을 잃지 않는 순결한 정신을 일깨운다.
“자연사박물관 유리상자 안에 오늘이 담겨 있습니다/두 아이와 마누라를 목 졸라 죽이고/사내가 한강에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단속반에 뒤집힌 리어카에서 쏟아진 오뎅과/떡볶이 벌건 고추장물 바닥에 늙은 여자가 퍼질러 앉아 울고 있습니다/철탑 위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가/몸에 불을 붙이고 뛰어내리고 있습니다/생존의 망루에 올랐다가 불이 붙은 사람들이 절규하고 있습니다”(`자연사박물관`부분)
철저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백무산의 시는 에두르는 법 없이 직설적이고 정직하다.
자본의 욕망과 폭력에 억눌린 채 여전히 고통스럽기만한 현실을 시적 기반으로 삼는 시인은 “자주 그렇게 소름을 돋게 하고 수시로 악몽과도 같”은(`소명`) “삶의 벼랑에 서”서(`밤 서울역`) “슬픔도 일용할 양식”으로(`너를 쬐어야 한다`) 삼으며 “낮고 어두운 곳”에서(`너를 쬐어야 한다`) “죽기살기”로(`마음이 천재지변이다`) 빠듯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시인은 또한 “이 나라 변방 깡촌 오지 변두리 벽촌 골짜기 섬마을 달동네”가 고향인 노동자들의 “그 많은 희생과 낙오에 눈을 감은 대리석의 도시”의(`탑이 꾸물거린다`) 비정함과 “범죄와 배신과 면죄와 다시 배신으로 지켜내는 체제”에(`체제`) 갇힌 우리 사회의 추악한 일면을 직시하며 자신의 `시`가 “도둑이 아니라 털린 놈이 감시를 당”하고 “도둑을 잡으러 간 자들”이 도리어 “도둑님이 되어 돌아오”는(`주인님이 다녀가셨다`) 이 “지저분한 시대”에(`땅을 딛고 일어날 뿐`) 내미는 준엄한 “레드카드가 되어야 할 거”라는(`레드카드`) 다짐을 새긴다.
백무산의 시는 인간 존재와 삶의 문제와 결부된 깊이 있는 사유와 진정성이야말로 시의 생명력임을 깨닫게 한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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