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조폭에 맞선 산골주민의 혈투 해학·풍자로 가족의미 되새겨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2-04-13 21:44 게재일 2012-04-13 11면
스크랩버튼
`위풍당당`

`탁월한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의 장인` `입담과 재담의 진면목` 등 성석제를 수식하는 평단의 말들은 흘러넘치도록 많았다. 한국문단 내에서 그만큼 이야기를 저글링하듯 주무르는 소설가가 또 있을까. 그의 소설은 언제고 세상을 성석제 자신만의 방향키로 조타하며 장착된 무기인 유머와 해학이 소설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어 웃음폭탄, 눈물폭탄, 시원 유쾌 발랄 후련의 폭탄이 시도 때도 없이 소설 안에서 펑펑 터진다.

그의 매혹적인 이야기에 빠져드는 날이면 반드시 날을 새우고 단숨에 성석제 전부를 따라 읽어야만 했다. 그런 그가 2003년 장편 `인간의 힘`이후 9년 만에 신작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이번에 출간된 장편 `위풍당당`은 시골마을에서 빚어지는 맹랑한 소동극의 형식을 빌려 재담과 익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낸다.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은 우리 사회가 처한 도덕적 파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충동이 소설 심층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위풍당당`의 서사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어느 궁벽진 강마을의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전국구 조폭들과 일전을 벌인다. 시골마을을 얕잡아보고 의기양양하게 쳐들어간 도시의 조폭들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고 반대로 마음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동안 강마을 사람들의 이해와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골마을을 도대체 왜 전국구 조폭들이 접수하려 드는 걸까.

“그런데 따라오고 있다. 검정색 벤츠에 탄 사내들. 우리에서 뛰쳐나온 맹수, 끈 풀린 미친 개 같은 인간들. 시속 오 킬로미터로 걷는 새미를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따라오는, 짙은 선팅으로 시커먼 유리 속,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세 인간들”

우연히 방문하게 된 강마을. 조폭들에게는 `자연산` 새미가 눈에 띄게 예뻐 보였던 것. 그 새미를 조폭 일당이 슬슬 따라가고 있던 와중 자신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조폭들을 피하려다 그중 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이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는 것. 곧 시골마을 대 조폭 간 전쟁이 벌어지게 된 시발점이 바로 그것. 쳐들어오는 쪽과 방어해야 하는 대치상황의 이야기는 수월치 않은 과정 속에서 결정되고 하나의 목표로 응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피는 섞이지 않은 타인. 마을 사람 각각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숨기고픈, 감추고 싶은 치부 속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잔인한 인생의 굴레에서 버림받았고 상처입어 그 강마을에 안착했다.

그래서 강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며 믿었고 마을을 건설하고 재배하며 구축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이 매우 당혹스런 사태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개중에는 “무조건 깡패들 오는 반대방향으로 토껴야죠. (……) 목숨이 아까우면 도망쳐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강마을을 애써 일궈온 노력, 그 강마을에까지 오게 된 구성원의 가슴 아픈 상처를 서로서로 보듬어 돋을새김하여 “그래 싸우자, 싸우자, 싸워보자. 너희와 함께 죽을 때까지 싸워보마.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뿌려줄게” 라고 `전투`에 대한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식구가 아닌, 자신이 선택해서 한 식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가까이서 부대끼다 어느 결에 서로의 세포가 닿고 혈액이 섞이며 연리지처럼 한 몸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강 같은 평화가 함께하기를”(`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는 `위풍당당`을 읽으며 웃을 것이다. 페이지 곳곳마다 까르르, 킥킥, 큭큭거리며 불가항력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성석제가 이끄는 위풍하고도 당당한 이야기의 경로를 따라다니면서 대책 없는 웃음이 터져나올 테고 그 안에 매복된 헤아릴 수 없는 해학과 익살의 축제 속에서 그저 철저히 성석제표 웃음에 지배당할 것이다. 허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웃음 뒤에, 포복절도할 만큼의 웃음이 사라지고 난 뒤에, 그뒤에 전해질 가슴 찡한 눈물 한 방울 또한 우리들은 거스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성석제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고 날을 새우게 하며 그가 제시한 소설적 현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거란 걸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석제를 읽고, 웃고, 운다. 성석제가 돌아왔다. 진정한 이야기꾼의 일침이 시작됐다.

문학동네 펴냄, 성석제 지음, 264쪽, 1만2천원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