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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양효자 정려비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2-02-29 21:27 게재일 2012-02-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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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보물 제68호 손시양 효자정려비가 경주시 황남동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려비(旌閭碑)란 그 나라의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업적을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동네 정문에 세운 붉은 문(紅門)을 만들고 비석을 건립한 것을 말한다. 손시양의 효자비는 고려 명종 12년(1182년)에 세워진 정려비다. 화강암을 네모 기둥 모양으로 치석한 것인데 비 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들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앞면에는 효자라(孝子里)라 쓰고 뒷면에는 5행 130자로 손시양(孫時揚)의 효행 내용과 비석을 세운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가난했던 시절 그의 부모가 각각 돌아가시자 3년씩 초막을 짓고 묘소를 지킴으로써 효행의 사실이 동경유수(조선 시대에 수도 이외의 요긴 한 곳을 맡아 다스리던 외관직)가 국가에 보고 되자 왕이 그 효행을 기쁘게 여겨 정문을 만들어 주고 포상했다고 한다. 손시양의 효도는 부모가 생존했을 당시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정성을 다해 모시던 중 사망 후에도 6년 간 시묘한 사실이다. 시묘(侍墓)는 부모님의 거상(居喪) 중 3년 간 그 무덤 옆에서 막을 짓고 사는 일을 가리킨다.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일을 부모님의 은덕을 잊지 못해 6년간이나 했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건립된 이 효자비는 동네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드나드는 학생들과 동민은 물론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일반적인 비석의 형식과 달리 네모기둥으로 세워진 것은 고려 시대의 불교와는 전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역사학적으로 볼 때 희귀한 자료라 한다. 오랜 세월 노천에서 춘풍춘우를 맞으면서 아무 의미없이 방치됐다가 1977년에 동민들의 주선에 의해서 효행의 가치를 높이려는 뜻으로 고증학자의 자문을 받아 보호각을 만들어 잘 정리되어 있다. 비신의 높이는 2m 정도이며 네거리 중심에 있어 찾는 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효행의 도리는 모든 선(善)의 으뜸이고 하늘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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