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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아름다움

이곤영 기자
등록일 2011-12-29 23:54 게재일 2011-12-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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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용계명문화대 교수·도예가
도자기를 통해 추구되는 미적특징은 시대나 장소 또는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조선시대와 같이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지배했던 사회에서 정신적 미적 가치인 절제의 미는 조선시대 백자에서 강하게 추구되었음이 관찰된다. 그것은 꾸밈을 질박하게 하고 화려함을 절제해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표현이다. 즉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수렴의 의미로 욕망을 최대한 절제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대인들은 백자를 제작할 때 생각에 사(邪)한 것이 없고, 잡욕이 없는 상태의 의식이 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양자의 상태는 모두 서양 미학에서 실러(Schiller)가 말하는 이성과 감성이 전인간성으로서 조화 통일된 아름다운 혼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것은 감성과 이성이 자유로운 조화활동을 형성하는 인간성의 이상이다. 감성과 이성, 자연과 자유 혹은 정신과의 상호작용적인 조화적 정태에 있어 아름다운 영혼은 그것의 표현영역에 있어 우미한 것의 세계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백자는 청정한 삶과 금욕과 절제를 존중하는 유교적 덕목과 관련된 것이며, 이에 따라 자연히 모든 형과 색이 배제된 백색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즉 형태를 버리고 사물의 참 이미지를 얻는다는 것과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백자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에도 연결된 것이다.

백자의 미는 물러서서 볼 때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는 지나친 잔재주나 재질과 장식이 불필요한 것으로 절제된 형태미를 강조한 것을 뒷받침한다. 백자의 선들이 구성하고 있는 형태의 비례와 이 비례감이 만드는 공간성 및 자연스러움을 조형성의 본질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정적·동적 균형감을 이루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일관성 있게 표현된다. 특히 취함보다는 버림을 강조하고 채움보다는 비움을 강조함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대담하게 생략하는 검약과 절제의 의지로 전체적인 형식을 중요시한 것이다.

인공적인 작위를 최대한 배제한 무념무상의 스스럼없는 작위형태로서 어떠한 목적과 형식이 절제된 그저 태어난 듯한 무작위에서 비롯된다. 변화와 대비보다는 조화와 담백함을 선호하는 조형의식에서 백자의 독특한 절제의 미의식을 반영한다. 특히 문양은 감상자가 동경하는 이상세계의 영원한 미적 감흥을 시적으로 암시하고, 그 위에 여백은 문양을 넓은 공간으로 확대시키며 생명을 환기시키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대상을 관찰한 후 불필요한 것을 버림으로서 절제미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백자에 나타난 절제의 의지는 무리하게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킴으로서 조형의 본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과장과 불필요한 장식적 요소를 선별해 버리거나 절제된 표현을 함으로써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욕망자체를 조절하지 않은 한 그 충족은 결코 오지 않는다. 오히려 완전한 충족감이란 채움에 대한 맹목적 추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덜어냄에 대한 절제가 지속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다 긍정적이다. 절제도 이와 같은 성공의 원칙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한 평생 살면서 굳이 그렇게 어렵게 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절제는 어렵게 사는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절제가 생활의 습관이 된다면 그 역시 아주 편하게 사는 생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백자에 나타난 절제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욕망의 실제적인 모습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현실의 공동체적 삶을 벗어나지 않고 현실사회를 강하게 긍정하면서도 그 세속 현실에 물들지 않는 정신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중용적인 삶의 태도이며, 실제적 이성으로서 감성을 조화롭게 조절하려는 절제의 미학정신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생각과 행동을 적당한 선에서 도에 넘지 않게 하는 절제의 의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을 추구해야 할 하나의 덕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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