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과 사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한 번 마음을 먹은 일을 쉽게 번복하실 분도 아니기에 필자는 필자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분 곁에서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다.
학과 사무실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자연히 당신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때는 갑자기 을지로 쪽에 국립도서관이 있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국어학자이신 심악(心岳) 이숭녕선생의 수필집에`대학가의 파수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분 수필집 원고 자료를 당신이 도서관에 가서 전부 필사를 해서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대학 1학년생 때니 1967년이었다고 했다. 그런 조그만 젊은 아이가 국립도서관에 들어가 하루종일 원고를 베끼고 있으니 도서관 사람들이 아주 귀하게 대해 주었다고 했다. 짜장면도 얻어 먹었더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젊은 청년이 공부를 해서 대학 선생이 되고 그러고도 숱한 시계 바늘이 돌고 돌아 오늘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니 말씀을 들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왜 명예퇴직을 결심하시게 되었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여러 가지 다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있겠지만 비교적 최근 일로서는 서울대학교 법인화 문제가 직접적인 작용을 한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교수가 사립학교 교수들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자부심과 국가공무원으로서의 무형적인 권리 때문이었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아무런 깊은 논의도, 대책도 없이 버리고나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하는 말씀이었다. 인문대학 학장으로 계실 때도 학장들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를 한 당신이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학교가 바뀌어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서울대학교 법인화는 기정사실이 된 것이 사실일 것이다. 비록 날치기 법안이라고 해도 법이 통과되었고 효력을 발하였으니 내년 초가 되면 서울대학교는 법인으로 재출발하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지금의 야당이 다수당이 된다 해도 이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데 흥미를 가진 정파는 크지 않을 것이다. 마치 날림공사를 벌이듯이 추진하고 있는 이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은 이 학교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는 학생들일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긴 시간 동안을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나자 필자는 인생도, 세월도 무상하다는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이 학교에 온지도 벌써 8년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자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데 나는 무엇을 목표로 지금도 숨가쁘게 달리듯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필자가 관계하고 있는 출판사에 잡지 문제로 들러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속보 하나가 떴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얼마 전에 왕년의 포철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셨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그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병이 깊었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황망한 마음에`박태준 평전`을 쓴 이대환 선배에게 문자를 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이게 웬일이우?” “그러게 말이다……”
세상은 운무에 휩싸여 있는데 한 시대를 풍운아처럼 살아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이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떠나고 또 새로 태어난다. 내가 이어가고 있는 이 삶이라는 것의 의미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