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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래 될 줄 알았지

이경우 기자
등록일 2011-12-12 23:22 게재일 2011-12-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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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편집국장
뜰의 콩깍지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우리말의 발음하기 어려움을 예로 들 때 대표적인 문장이다. 깐 콩깍지이면 어떻고 안 깐 콩깍지면 어떠냐, 다 같은 콩깍지인데. 그보다 우리 말에서 진짜 어려운 것은 `예, 아니오` 라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보통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한다. 의사 전달이 분명하고 필요없는 오해를 없애고 또 쓸데없는 유추해석을 막아 근래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소통이 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곧잘 부딪치게 된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외교관처럼 간접화법을 쓸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분명하게 예, 아니오를 밝히지 않는다. 곤란한 질문엔 대체로 동문서답식 선문답을 한다. 그러고는 나중에 문제가 되면 해석을 잘못 했다고 되레 쏘아 붙인다. 때로는 언론에 무식하다고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고 잘못 들었다거나 혹은 말실수였다고 핑계를 댄다. 술 핑계는 단골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구설에 올랐던 것도 그런 경우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다. 안 원장의 등장으로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이자 미래권력이라 불리는 박 전 대표의 철옹성 같은 지지율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가 박 전 대표에게 `안 원장이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앞섰다`며 의견을 묻자 “병 걸리셨어요” 했다는 것 아닌가.

언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몰아붙이자 박 전 대표는 이튿날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부적절했던 것 같다”며 물러섰다. 박 전 대표로서는 물론 안 원장을 자신과 비교하는 자체가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백신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안 원장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백신 프로그램이 필요하냐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안 원장 팬이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박 전 대표는 자리가 인천 고용노동청의 교육센터를 방문한 자리였고 전날 한 질문이 반복돼서 그랬다고 사과를 해서 일단락 되긴 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던 대구 구청장들이 “내가 언제 총선 출마한다 그랬나?” 하듯 출마를 접었다. 곽대훈 대구 달서구청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주위에서 자꾸 출마 얘기가 나오니까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입장 표명이 늦어진 데 대해서는 사과를 했다. 이재만 동구청장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종화 북구청장도 구청장직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임병헌 남구청장은 진작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들이 총선 출마 예상자로 거명되면서 이래저래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지역민들로부터 자신의 인기도를 떠보고 지지도를 높이는데 한껏 이용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아님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용감히 총선에 뛰어들 위인이 누가 있나 면면을 봐라”라는 선배 언론인은 “내 그럴 줄 알았다”고 평한다. 그들이 분명히 선을 긋고 구정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한 죄는 분명하다. 거물 정치인도 아니면서 자신의 거취를 놓고 벌이는 설왕설래를 은근히 즐기고 여론을 농락한 것은 아닌가.

그들이 분명히 입장 표명을 미루면서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구청장 보궐선거 출마후보자들은 잠시 즐겁다 말았다. 그들은 겉으로 “불출마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아쉬운 감은 지우지 못한다. 퇴임하지 않는 구청장들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진작 입장을 밝혔다면 주위에서 헛물켜는 인사들이 없었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출마를 저울질하는 수많은 예비후보들의 양다리 걸치기는 앞으로 또 얼마나 계속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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