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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물선 속의 나의 위치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2-02 23:09 게재일 2011-12-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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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우리사회에서 보도해야 할 소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신문사 등 언론매체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방, 국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계속 사건이 일어나서 그것의 전달에 통신망은 쉴 틈이 없다. 많은 문제점이 곳곳에서는 연속으로 일어난다.

기삿거리는 인간의 변화무쌍한 마음 때문에 일어난다. 마음의 흐름은 그 변화의 폭이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는 사람마다 성장환경과 능력에 차이가 있고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보는 견해의 방향과 강도, 그리고 강조점에서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념의 문제에서도 좌와 우, 그리고 중립이 있다. 그 안에 또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다. 이런 것을 도표를 그려 보면 포물선의 형태를 띈다. 양쪽으로 갈수록 분포가 적고, 중간수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각각의 사람 마음은 포물선 전체 중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그가 잘 낫다고 해도, 그는 인간 마음의 스팩트럼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포물선의 중간 부분을 `대세(大勢)`라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이들 대세에 속한 사람을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하느냐하는 전쟁을 치른다. 이것을 선거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가는 대세에 속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는 똑똑해 미래를 내다보고 조직의 장래를 마음에 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프의 선두 그룹에 속해야 한다. 다만 대세의 사람과는 대화하고 그들을 다독이면서 조직의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한다.

정치에서는 대세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잘 이끄는 사람을 `정치가`라고 하고 속임수를 쓰거나 목소리만 큰 사람을 우리는 `정상배, 정치꾼`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일생은 선거에서 생을 시작하고 평생을 선거를 하면서 보내게 된다. 그럼으로 선거를 아무렇게나 보아서는 안 된다. 선거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거 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중간 단계라고 표현하면 대충 맞아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도 이 사회에는 중간층 보다는 양 극단 층이 비교적 많아서 많은 잡음이 들린다. 양 극단이 많다는 것은 포물선의 모양이 비교적 평평하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 포물선이 사회 모양세의 기준이라면 평평함은 사회가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을 나타낸다.

정치적인 면에서 한 쪽 극단이 많아지는 것을 우리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또는 콤뮤니즘 등에서 보아 왔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은 극우로서,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민족을 함부로 부려먹거나, 살상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극좌의 콤뮤니즘 사상도 역사에서 많은 오점을 남겼다. 강요하거나,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멸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양 극단을 생각해 보자. 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사람이다. 또 조국이나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극단의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좋은 극단에는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애국자나 예수가 이 부류에 들어간다. 애국으로 희생된 자와 예수의 차이는 `그 당시의 조국`을 위했느냐, 또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인류를 위했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양 극단의 인물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포물선 복판의 평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부필부인 우리가 매일을 그냥그냥 보낸다면, 그 생활은 무의미하고 건조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죽은 고기가 물에 떠내려가는 경우와 같다.

평범하더라도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목표는 작아도 관계가 없다. 작은 것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는 포물선 중간부위의 내용을 순화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 시대의 중간부위를 좋게 키워 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포물선 중간의 너른 부분에 속한 일반 시민이지만, 좀 더 의미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노력을 할 때, 그때 우리는 `왜 사는가?`의 답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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