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관심은 오세훈 시장이 거리에 나가 1인 시위를 하듯이 투표 날짜를 알려주고 있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인 시위는 사정이 급박한 사람들이 흔히 광화문 앞이나 시청 앞이나 법원 앞에서 벌이는 일인데, 그걸 지금 시장님이 하고 계신 것이다.
어제 필자는 처음으로 무상급식에 관한 선거 포스터를 접할 수 있었다. 아파트 앞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이 포스터 내용은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 내용은 무상급식의 두 가지 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인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하는 단계적 무상급식`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전면적 무상 급식`
이 포스터를 보면서 먼저 궁금했던 점은 이 주민투표가 왜 찬반 투표가 아니고 두 가지 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투표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찬반 투표를 하면 투표하기도 좋을 텐데, 질문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답을 낼 생각이 별로 안 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날 저녁 필자는 무슨 일인가로 출판사 직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분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자로서, 독신 여성에, 생태 환경을 아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 화제가 무상급식 이야기에까지 미치자, 대뜸 무상급식을 다 해줘도 문제라고 했다. 학교마다 무상급식을 위한 영양사며, 조리사를 따로 다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더구나 이렇게 단체급식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돈가스며, 스테이크 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마구 섭취하게 될 테니 참으로 걱정거리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짐짓 관리를 엄격하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과연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런 수준의 관리가 가능하겠느냐고 되물어 왔다.
이런 문제는 사실,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서 도시락을 제대로 싸줄 수 있으면 문제가 제기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생활 방식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들 도시락 싸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맞벌이 가정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싸주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가구당 실질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니까 말이다.
밤에는 또 비가 내렸다. 올해 비는 어찌 그리도 많이 내리는지 농사 모르는 필자도 벌써 이러면 벼는 언제 익나 하는 근심이 생겼다. 또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 언론에서들 보도를 안 해서 그렇지 4대강 공사를 한 게 잦은 비 때문에 말이 아니게 되었다고들 한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비가 많은 것은 백성들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려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춘향전』에 `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인고, 촉루락시 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두루 접하다 보니, 서울 사람들은 지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서는 별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문제가 너무 어려워 풀기가 싫고, 예산 액수가 얼마가 든다 해도 너무 큰 숫자들에 이미 면역이 생겼고, 뉴욕 증시 폭락 여파로 중산층들도 심기들이 몹시 편치 않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 사람들이 꽉 찼다. 무슨 역인가 젊은이들이 우루루 쏟아져 들어오는데 왜들 이렇게 키가 큰지? 세상이 참 많이도 변해서 옛날에는 중키는 된다고 자부하던 필자가 인의 장벽에 둘러싸인 난장이가 된 느낌이다. 이 키 큰 사람들이 다 채워야 할 입을 하나씩 갖고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빽빽한 젊은이들 태우고 서울의 전철은 또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