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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추현동 박씨 효자각

영남이공대 교수
등록일 2011-08-11 21:02 게재일 2011-08-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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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추현동 박씨 효자각, 안동-영덕 국도변에 이건한 효자각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교적 풍속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이러한 유교적 풍속에서 발상한 유교건축은 알고 보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불교건축이나 궁궐 건축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 있고 그 숨겨진 가치 또한 크다.

유학의 근본이념은 효에서 출발한다. 효는 가정을 지키는 근원이며 한 민족의 전통이자 풍속이다. 이러한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덕행을 표창하며 타인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해 효자나 열녀에게 나라에서 상을 내리고 그가 살고 있는 고을 입구에 비석을 세우거나 그 집 문 앞에 붉은 칠을 한 정문을 만들어 세우는 것을 정려각 또는 정려문이라 했다.

여기서 정(旌)자는 원래 깃발을 뜻하는 말로 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려(閭)자는 마을을 의미한다. 이 정려에 충(忠)·효(孝)·열(烈) 중 한 글자를 새겨서 그 행실을 표창하는 종류를 표시하고 그의 이름이나 직함을 새겼다. 그래서 사족의 경우는 가문의 명예였으며 천인의 경우 면천해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하는 등 실제 생활에 이익을 주어 후손들로 하여금 본받도록 하였던 것이다.

1986년 안동 임하댐 수몰지역 지표조사와 관련하여 청송지역 수몰지구내에 있던 `청송 추현동 박씨 효자각`에 대한 문화재지정조사를 할 때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로 첫 눈에 이건 경비가 그다지 소요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실제 이 효자각의 후손들은 그 정도의 능력조차도 없어 자칫 수몰될지도 모를 안타까운 처지였었다. 오직 이건할 방법은 문화재지정을 받는 길 뿐이었다.

이 효자각은 밀양 박씨 박충국이 그의 부친 박득춘에게 행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유림에서 조선 고종 28년(1891)에 정려가 내려져 추현리에 건립한 전각이다. 충국, 용국, 준국, 흥국 4형제가 부친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다가 장자인 충국이 부친보다 먼저 죽자 남은 3형제가 형의 뜻을 받들어 부친을 정성껏 봉양하여 부친이 103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4형제 효자각`이라고 전한다.

돌이켜보면 실로 효는 가정을 지키는 근원이며, 효자각은 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잊혀져가는 당시의 덕행에 대해 오늘 다시 나라에서 상을 내리는 의미로 이 효자각을 수몰지역에서 건져 안동 영덕간 국도변의 잘 보이는 곳에 이건토록 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이를 본받도록 함이 좋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결국 이 건물은 효자각으로서는 최초로 문화재로 지정(경상북도 문화자료 제180호)되었다.

마을 어귀에 홀로 외롭게 자리하고 있는 정려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 이 나라 삼강윤리의 상징적인 기념물이 아니었던가. 그래서`4형제 효자각`은 국도변에 옮겨와서까지 우리들에게 효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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