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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8-11 23:32 게재일 2011-08-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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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거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거나 일제식민지 통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일제는 사상이 불온하다고 했다.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고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감옥에서 죽고 독립전쟁에서 죽고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를 전담하는 고등계 형사의 고문에 죽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다. 표면상으로 독립지사들은 건국훈장을 받고, 불령선인 대신에 독립지사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건국한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파를 중용해 친일파가 권력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국회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몇몇 친일파가 체포되고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이승만에 의해서 반민특위는 곧 해산되었다. 친일파가 주인이 된 나라에서 독립투사들은 이름만 화려했을 뿐 실제로는 국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허울 좋은 이름만 얻었을 뿐 어렵게 살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독일이 선진국이 된 것은 나치에 대한 응징이 확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나치 심판은 아직도 계속된다.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됐지만 진정한 해방은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는 역사의 발전이 없다는 자각에서 만들어진 단체가 민족문제연구소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발전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다.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의 단초를 마련한 분이 친일문학연구에 일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이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 문제를 연구하다가 부친의 친일 사실을 알게 돼 심한 갈등을 겪었지만 오히려 부친이 친일 사실을 인정하고 아들로 하여금 친일인사 명단에 자신을 올리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친일파 후손들의 끈질긴 방해를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사실을 밝히자는 데 반대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런데 이 땅의 후손들은, 친일파 아닌 사람이 누가 있었나?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조했을 뿐이다. 등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은 물론 친일파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이 사회의 실질적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에는 김 아무개 씨가 유관순은 폭력 여학생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청회에 김구 선생을 폄하하는 허위 사실을 적은 메일을 보냈다. 이 사건의 대법원 최종판결이 지난주에 있었다. 명예훼손이 인정된다 하여 벌금 750만원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7년이 넘는 재판의 결과다. 김구 선생이나 유관순 열사를 음해하는 일이 일어나고, 이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7년이란 세월이 필요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1945년 해방되었지만 진정한 해방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이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우리사회의 부도덕한 일, 어이없는 일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불리던 불령선인이란 이름 대신 삐딱한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일부몰지각한 사람, 혹은 좌빨이라고 불린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이 200일을 넘기고 있다. 7월 30일 3차 희망버스가 1만여 명의 시민을 싣고 영도에 다녀왔다. 프랑스의 르몽드, 영국의 BBC, 미국의CNN 등 세계적인 언론이 주요 기사로 다루는데 비해 우리의 공영방송들은 뉴스 끝에 사소한 시민들의 분쟁쯤으로 다루고 있다. 희망버스 때문에 잠도 못 잔다는 시민의 인터뷰만 돋보이게 다루었다. 한 여성노동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크레인에 올라 200일이 넘게 고공에 살고 있고 이를 지지하는 만여 명의 시민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건에 대해, 시끄러워 잠도 잘 수 없다는 시민의 발언을 같은 무게로 인식하는 우리의 방송, 참으로 공정한 방송이다. 이런 우리사회의 답답함을 풀기 위한 노력은 온갖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희망버스라는 것도 절망 끝에 나온 새로운 희망이다. 우리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시민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바가 있다. 사람만 모였다 하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 잡가니까 1인 시위라는 것이 생겼고, 촛불문화제라는 것이 생겼고, 삼보일배(三步一拜라)라는 것이 생기기도 했다. 삼보일배는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것이다. 원래 스님들의 수행방법이지만 우리사회를 바른 사회로 만들기 위한 일에는 종교적 격식도 초월한다. 스님, 신부님, 목사님들은 각기 종교는 다르지만 모두 삼보일배에 함께했다.

최근에는 삼보일배도 별 효험이 없으니까 삼보일퍽(fuck)이라는 것이 생겼다. 탁현민 교수가 창안한 것인데 세 걸음 걷고 한 번 팔뚝 욕 하는 것이라 한다. 시위의 종류가 나날이 늘어나고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국가의 묵인 아래 일어나는 부도덕하고 옳지 못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이 임계점을 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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