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 받아 올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광복(光), 말 그대로 빛의 회복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드리워졌던 억압과 착취, 부자유와 고통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로의 회복이다. 66년 전 우리는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 광복을 이뤄야 한다. 아직도 이 땅 곳곳에는 어두움이 남아 있고, 빛의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첫째가 북한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은 사정없이 유린되고 있다. 과거 나치정권에나 비교될 수 있을까,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우리 국회는 북한 인권법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의 참 맛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들에게 제2의 빛의 회복은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구석구석에는 부정부패의 어두움, 이기주의와 지역주의의 흑암,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어두운 투쟁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환해야 할 종교계에도 다툼과 분열, 이기심과 내려놓지 못함으로 먹구름이 있다. 모두다 빛의 회복이 필요한 영역들이다.
구약성경 이사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이사야 60:1)고 선언했다. 70년 바벨론 포로생활로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는 상황이지만 빛이 오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빛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이사야 60:2)고 확인하고 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선언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그러기에 참된 빛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안에 평화와 자유와 사랑이 있다. 태양을 등지면 어두움이지만, 태양을 향하면 환함이 되는 것처럼, 빛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밝음이지만, 돌아서면 어두움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4)고 하시고, 이어서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라”(마태복음 5:16)고 말씀하셨다. 빛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향하면 보름달이 되어 세상을 밝힐 수 있지만, 반대로 등지면 그믐달이 돼 아무런 영향력도 나타낼 수 없다. 빛 되신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참된 평화와 안식과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그 따뜻하고 환한 빛을 이웃에게도 반사할 수 있다.
언젠가 미국 타호 호수(Lake Tahoe)에서 캠핑을 한 적이 있다. 초저녁만 해도 괜찮았는데, 새벽 무렵 찬바람이 텐트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 밖에 나와 해뜨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떠오른 태양은 얼어 있던 마음, 생각, 아픔 말끔히 녹여 주는 따뜻함이었다.
누구나 빛 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미 빛을 경험한 이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빛을 비춰야 한다. 「3분 고전」의 저자 박재희씨는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는 말에 질문을 던진다. 그토록 원하던 인생의 목표인 도를 깨달았다면, 아침에 바로 죽어도 괜찮다고 해야지 왜 낮을 지나 밤까지 기다렸다가 죽어도 좋다 하느냐는 거다. `그럼 낮엔 뭘 할까?` 그의 대답은 “아침에 도를 깨닫고 낮에는 그 도를 전파해야 의미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도 아름답지만, 그 깨달음이 남에게 전파되었을 때 더욱 의미 있다는 뜻이다.
광복 66주년, 빛이 회복됐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빛을 회복해야 할 곳이 많다. 먼저 빛을 누리는 자가 빛을 비춰야 한다. 한국은 북한을 비롯한 어두운 국제사회에 빛을 비추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으로 어두운 현장에서 제2의 광복을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