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라면 산골로 바닷가로 떠난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어디로 가든 출퇴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상사의 감시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휴가에서 오히려 짜증과 불쾌한 추억을 만들어 오는 수가 있다. 아주 사소한 데서 시작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먹는 문제이다.
자치단체마다 자기 고장으로 오라고, 물 좋고 정자 좋은 자기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라고 선전한다. 대구 시내버스에도 지하철역에도 모든 시 군마다 경쟁적으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서울역에 내리면 안동시 영덕군 울진군 거제시 통영시 거창군 등 대한민국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자기 지역이 최고라는 광고판을 세워 놓았다. 경북도는 아예 서울역사에 관광홍보센터를 설치했다. 자치단체들이 내놓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모양이 유흥업소의 호객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들 자치단체들의 호객행위는 관광객이 오면 돈이 된다는 데 있다.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각종 축제부터 행사들은 사람이 와서 돈을 쓰고 그러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논리다. 걸핏하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몇 십억원이라고 선전한다. 하긴 다음달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생산 유발 효과는 5조5천800억원, 부가가치 유발은 2조3천400억원으로 추산(대구경북연구원)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제효과를 65조원(현대경제연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니 자치단체가 관광객 유치를 곧바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결시키는 선전을 탓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가족들과 대구 인근 계곡에 다녀왔다는 이웃을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시원한 곳에서 편히 쉬다 왔느냐?”는 물음에 대뜸 “오리 1마리 3만5천원은 너무 비싸다”며 불평했다. 우리나라 관광유원지의 음식들이 대체로 비슷한 메뉴에 가격은 비싸고 그러면서도 불친절하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관광지면 어디를 가도 토종닭에 도토리묵과 파전 등이 주요 메뉴들이다. 어쩌다 유명 식당이나 특정 음식점에 가면 한 상 가득 다양한 요리가 나오지만 그때는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산중엔 특식이 나온다 해도 더덕부침개나 산나물 버섯종류가 고작이다.
무조건 사람만 모으면 돈이 되나? 사람이 오면 돈을 펑펑 쓰나? 돈 쓰도록 자리를 깔아야 될 것 아닌가.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음식 메뉴도 단순한데다 불결하고 불친절하다면 이건 손님을 청해 놓고 예의가 아니다. 또 관광객도 다시 찾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치 도회지에서 휴가 온 사람의 돈은 돈이 아니라는 투다. 같은 1만원권이고 1천원짜리인데,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농식품부의 원산지 표시 단속 홈페이지에는 지난 1년 사이 단속된 전국의 3천여 개 식품 취급 업소들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열거돼 있다. 대구나 부산 인천이라는 광역 도시의 마트 식육점 음식점에서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경북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전국을 가리지 않았고 영천 의성 고령 영양 등 단속되지 않은 곳이 없다. 품목도 쇠고기 돼지고기 김치 뿐 아니라 고사리 콩나물까지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단속됐다. 도대체 속이지 않고, 북한산 또는 중국산이라고 떳떳이 밝히고 조리하고 팔면 안 될까.
그들의 단속 변명은 한결같다. “요즘 경기가 워낙 나빠서…” 마치 강도사건의 피의자가 모자를 뒤집어쓴 “먹고 살기가 워낙 힘들어서…”라고 변명하는 것과 같다. 다 그렇게 하는데 뭐 그리 난리냐고 되레 큰소리다. 못 먹을 것을 판 것도, 무슨 큰 손해를 입힌 것도,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을 어디로 피난 가서 기분 상하지 않고 돌아올지 장소 선택이 망서려진다. 편안하게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