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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은 국가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10-05 22:30 게재일 2009-10-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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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한동대 교수

우리나라가 내년 주요 20개국 회의를 유치했다. 경사다. 지금 세계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확보한 스무 나라가 세계 경제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기구의 첫 공식 회의로 우리나라를 지명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경사로운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일이 국가의 품격을 높인 일이라고 했다. 하여튼 잘된 일이다.

아마 이런 행사를 자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국가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를 알아볼 것이고, 세계의 뉴스에 우리나라가 더 많이 비칠 것이고, 다녀갈 각국 지도자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국가의 대외적 품격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것은 품격이라는 말과는 좀 다르다. 사전에 의하면 품격(品格)이라는 말은 “타고난 사람된 바탕, 사물의 품위”라는 뜻이다.

단기간에 획득된 경제력 등을 기준으로 보는 단어 같지는 않다. 국가의 품격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받는 존경과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긍지와 행복도로 판단하면 거의 유사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품격을 높이기 위해 할 일은 다양하다. 반드시 경제력만으로 이뤄질 일은 아니다. 안팎의 여러 가지 요인과 평가가 함께 어우러져 이루는 것이 국가의 품격이다.

오십대 남성이 여덟 살 아이를 성폭행하여 치유불능의 상처를 입혔다. 온 나라가 분노하고 민심이 끓어올랐다. 사회가 이렇게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래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높은 긍지를 가질만한 나라는 아니다. 공자님이 꿈꾸던 세상, 노인이 평안하고 어린이가 안길 곳이 있는 곳, 이것을 이루지 못했다면 자랑스런 조국이 되기 어렵다.

전과가 17범이나 된다는 사람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해서 이런 참사가 있었다는 것도 속이 상하는 일이다.

검찰이 그 성폭행범을 처벌하기를 청하고,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이 형을 선고하고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했지만 아직도 국민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온 국민이 더 가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논란 중이다. 그러나 국민의 법 감정이라는 것은 이름 그대로 감정이다. 분명하고 논리적인 법률의 근거 위에 서지 않았으므로, 법 감정은 종종 과잉 표현된다. 그에 비해 법률가들은 차가운 잣대를 들고 사태를 본다. 그리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국민이 냉엄한 법원의 판결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법원이 판결하는 개별 사건마다 국민이 법 감정을 들이대는 것도 품위있는 사회는 아니다.

비전문가인 국민은 그때그때의 느낌과 상황에 따라 반응할 뿐이다. 그 모든 감정적 반응에 대해 법원이 휘청거릴 수는 없다. 우리 법원은 과거 비민주적인 악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을 때 그런 엄정함을 강력하게 유지했다. 수많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그 비민주적인 법에 항의하고 그 법으로 처벌되고 있을 때에도 법원은 법의 일관성을 지나치리만큼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법원이, 대통령까지 가세한 이번 논란에는 흔들리고 있다.

품격있는 국가를 원하는 우리는 이런 사실 앞에서 괴롭다. 그 어린 소녀가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도록 우리가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 먼저 우리의 괴로움을 구성하는 요인이다. 외국에 나가면서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이 그 나라의 사회 안전망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안전하지 못한 나라인가. 남들이 보기에 안전하지 못한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품격이 높은가.

게다가 우리가 또 자괴하는 것은 이 판결에 대해 우리가 보이고 있는 태도이다.

우리 법률의 목적은 보복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분노와 보복으로 법률을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훨씬 저급한 사회규범이기도 하지만, 민심만 자극하면 어떤 가혹한 처벌도 정당화하는 법률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의 대립상이 점점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법률이 감정적으로 생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성을 높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경제적 지위로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안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국가의 품격을 구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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