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효종이 승하했을 때 계모 자의대비가 살아 있었다. 그가 아들 효종의 상복을 얼마나 입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당시의 권력집단이던 서인은 1년이라고 결정했다. 여러 가지 이론을 덧붙였지만, 이는 사실상 효종을 맏아들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맏아들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3년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말로만, 우리나라의 제도를 인용해 맏아들로 대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674년 효종비 인선왕후가 승하했을 때도 자의대비는 살아 있었다. 그런데 서인은 그가 9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분명히 맏며느리로 대접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난번 효종을 맏아들로 대접했다고 주장한 것이 허위였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었다.
서인은 이렇게 자기모순에 빠져 예송논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논리의 일관성을 잃고 휘청대던 서인은 나중에 노론으로 바뀌면서 합리성을 버리고 권력추구로만 치달아갔다.
이 논쟁은 후대에 일본과 친일 역사학자들에 의해 공리공론의 대표적 예화로 이름지어졌다. 겨우 상복 입는 문제로 사람이 죽고 살았다거나, 그런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등으로, 본질은 덮이고 우스꽝스럽게 과장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과장하고 비난한 친일파들이 예송 때 집권자들의 계승자였다는 것이다. 나뭇가지가 뿌리를 부인한 것이다.
2002년 7월 장상 당시 국무총리 서리가 자녀를 위장전입한 일이 문제가 되었다. 달리 특별한 흠결이 없었으므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그는,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고, 당시 야당은 이를 크게 문제삼았다.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이는 불법이었고, 총리는 취임하지 못했다.
2006년 3월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철도노조가 파업한 날 골프를 쳤다. 그는 그 전에 집중호우로 당황스러운 날도 골프를 친 적이 있었으므로, 철도노조가 파업한 날 골프를 쳤다는 것이 뉴스가 되었다.
당시 야당은 노발대발했다. 날마다 언론이 떠들고 결국 총리는 사임했다.
골프가 나쁜 일도 아니고 3.1절이 근무일도 아니었지만, 당시 총리는 여론을 무시하지 못했다.
누구든지 고위 공직에 취임하고 일하려면 당연히 그 직무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복무를 마쳐야 하고, 위장전입이 없어야 하고, 부동산 투기를 안 해야 하고, 학자라면 연구윤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입각한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놀랍다. 도덕적으로 미안할 정도의 일은 아예 문제되지도 않는다. 명백히 법률을 위반하고 처벌되지 않은 것만도 1인당 한두 건이 아니다. 어떤 분은 아예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모두 해당되어서 `종합세트`라는 비아냥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마 대부분의 장관후보자는 청문회를 통과하고 장관에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문제들이 지적되고 입증되고, 심지어 법률을 위반한 것을 자인하기도 했는데,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넘어갈 듯하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수당인 여당이 일방적으로 그분들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당인 한나라당이 전에 그 야당이던 한나라당이다. 자녀를 위장전입시켰다고, 총리가 휴일에 골프를 쳤다고 사임시킨 야당, 그 엄정하고 정의롭다던 준법집단이 지금의 저 관대한 여당이다.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겨우 6년, 3년 전에, 그렇게 엄격하고 정직하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저렇게 관대해지면 국민은 혼란스럽다. 병역은 필해야 하는가, 아닌가. 위장전입은 해도 되는가, 아닌가. 논문 중복게재는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다른 사람의 미래의 행동을 확신할 길은 없다. 그가 어떻게 할지는 오직 그의 결정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가 과거에 한 판단을 근거로 그의 다음 행동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 사이에 일관성이 없으면, 우리는 그의 미래를 믿어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