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 떨기로 이름난 일본 관광객들조차 다이어트에 좋고 적당히 취하는 것이 좋아 찾는다.
촌스럽다. 시큼한 냄새가 난다. 머리 아프다면서 무시당했던 막걸리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술로 돌아왔으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GS25가 내놓은 주류매출(1월부터 8월24일까지)을보면 막걸리는 지난해 대비 68.5%가 급증해서 0.3%의 증가에 그친 와인을 눌러 주류 판매량 4위에 올랐다.
1위는 여전히 맥주, 2위와 3위는 소주와 위스키지만 곧 위스키를 제치고 한 단계 더 오를 기세다.
막걸리 붐, 도시에서 일다
막걸리 부흥을 선도하고 있는 서울의 경우 2003년부터는 매년 10만 리터가량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 팔린 막걸리는 7천 168만 9천 리터다. 물론 지방에서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늘고 있다.
막걸리 붐은 쌀을 다시 사용하게 되면서 품질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황에서 빠져나가려는 지혜도 숨어 있다.
만 원이면 두 사람이 거뜬하게 배를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 지키기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
우리 술은 원래 가정에서 빚는 것이다. 허가를 받는 것은 식민 유산이다. 그 잔재가 보릿고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군부독재와 잠시 호흡을 맞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의 `사케`처럼 지방마다 특색 있는 술을 내는 것이 죽어가는 농촌을 살리는 길이 기도하다. 이미 공주지방 밤 막걸리는 명품이 됐다.
우리도 300종류는 만들 수 있다. 전통술을 다양화시키고 품질, 외모를 고급화해서 그 마을 산업으로 키우면 남아도는 쌀도 소비하고 농가 소득도 높이고 전통도 이을 수 있으니 모두가 좋다. 양조장과 마을 비주로 이원화 시키고 인터넷 판매 등 유통과정도 현대화 시켜볼 만하다.
한국은 지금 1인당 쌀 소비량은 95년 106.5kg에서 지난해 75.8kg으로 줄었지만 생산량(460만~480만t)은 내려가지 않고 있다.
1976년 한국인이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던 보릿고개를 통일벼의 개발로 벗어났으나 일제 잔재에서 시작된 의식은 지금껏 다 던져 버리지 못하고 있다.
1966년 쌀 사용 전면 금지령이 내리면서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다가 1990년 금지가 풀려 차츰 쌀 비중이 높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밀가루를 쓰거나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넣는다.
막걸리는 저알코올(6~7도)이어서 부담이 없고 10여 가지의 필수아미노산과 유산균까지 풍부하다.
국가는 주세법을 개정, 농가에서 술 빚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대신 품질관리는 더욱 강화해서 전통 술(저알코올)의 질을 높여 외국 술(고알코올)에 빠져버린 국민도 구하고 경쟁도 해볼 기반을 만들어 보자.
영양 양조장은 살아있는 술 박물관
산행인구가 늘어나면서 `산꾼들의 음료`라는 설을 뒷받침하듯 명산 아래 술도가 막걸리가 더 많이 팔린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도가는 명산 일월산이 품는 경북 영양 막걸리다. 영양읍내에서 이름난 할머니 주막에서 산채 정식 상에다 막걸리 두 대접을 마시고 만 원을 내니 오히려 잔돈을 내준다.
1926년 일제 때에 지어진 영양양조장은 살아있는 술 박물관이라고 불리울 만큼 현존하는 막걸리 양조장으로서는 가장 오래됐다. 현관에 `전화 6번`을 알리는 작은 팻말이 말해주듯 역사가 깊다.
누룩을 띄우는 건물은 벽과 천장이 두 겹에다 폭이 1m쯤 된다. 벽 사이에 왕겨로 채워 내부를 실온으로 유지시켰으니 고추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물론 일월산을 찾는 산꾼들 입맛을 흡족하게 했을 것이다.
이 건물은 곧 등록문화재가 될 것으로 예고됐다.
오일장에는 어디나 주막이 존재한다. 길은 흩어지지만 주막은 여론을 모은다. 그 주막에서 길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울릴 한 단지 막걸리가 없으면 민심은 이내 갈갈이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