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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時代(노인시대)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8-25 22:30 게재일 2009-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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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는 참 현명하시다. 나이 들면 눈 귀를 멀게 해서 아는 것이 비워지도록 조절했다. 가뜩이나 아는 것이 많아서 앞으로 잘 나서는 노년의 심성을 미리 방비하신 현명함이 묻어 있다.

나이가 많아지고 여생이 평안해질수록 헛된 욕심에 사로잡혀 재색명리를 탐하다 추한 모습으로 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젊은 날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나이 먹어 노추의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해 세상을 실망시키는 일들이 인생 황혼기(晩節)기에 겪는 가장 뼈아픈 일이다.

18년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산 정약용은 다시 18년을 살면서 시(詩)와 저술(著述) 차(茶) 생활에 몰두함으로써 가장 곱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냈다.

다산이 노년에 지은 시`밤(夜)`을 보면 길고 긴 겨울밤의 정취를 그리고 가난한 삶을 어떻게 바꿀 계책이 없건만 등잔불 비추는 데서 책 읽는 재미에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읊었다.

재색명리에 집착, 자신과 자녀 제 식구 안위에만 집착하는 천민부자와는 달리 다 같이 잘사는 것을 걱정한 다산의 정신세계를 흉내라도 내는 이가 지금 세상에는 몇 명이나 될까.

처칠이 노년에 그린 그림은 지금 시가로 6억 원에 넘나들 만큼 유명하다. 노년을 그림 그리기에 빠진 처칠은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처음 100년은 그림 그리는 데 쓰고 싶다”고 했을 만큼 아름답게 빠졌다.

저지난해 타계하신 김준성 경제부총리도 63살에 생활의 수레바퀴였던 관직을 떠나면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인 소설 쓰기에 몰두, 10여 편의 장 단편을 썼다.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38세)을 했지만 행원 생활로 문학의 꿈을 접었기 때문이다.

좀 일찍 공직에서 물러난 아버지가 낚시에 빠지는가 싶었다. 어느 날 산으로 발길을 돌려 정년도 정원도 없는 산길을 미친 듯이 헤매다 60이 넘어서야 서실을 찾고 찻그릇도 갖추어 시간을 한가하게 쓰는 가했는데 어느 사이 마당 한쪽에 철 따라 피는 꽃을 심어 집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동양정신에는 씨를 뿌리고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그 자체가 자연의 순환이치나 영혼의 존재이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이가 더 들면 단풍잎처럼 살 것을 주문한다. 단풍은 곱기도 하지만 삭풍이 불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葉歸根)게 이치다.

티베트의 노인들은 중국에 구속받고 히말라야에 갇혀 절절히 외롭게, 가난하게 살지만 늘 베푸는 삶이니 정신건강이 아주 좋다. 그래서 티베트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도 없고 더욱이 우리처럼 노인을 외롭게 보내는 일은 없다.

노인은 많아서 좋은 점도 있고 불편스런 점도 있다. 동양정신에서 보면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어서 중국에서는 노백성(百姓)이라 부른다. 백성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노사(師)로, 퇴계(退溪)를 더 높이 부를 때는 퇴로(退老), 목은(牧隱)을 목노(牧)라 했다.

지금 노인의 자화상은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귀찮은 존재로 밀리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농촌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다.

전국 평균 추세로 가더라도 올해 태어난 아이가 서른 살이 되면 적어도 노인 1명을, 10년이 더 가면 1.2명을 부양해야 하는데 아이는 갈수록 낳지 않아 올해 출산율이 1.12명까지 떨어질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낡은 것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자연의 윤회가 순조롭게 이루어져야만 건강한 사회가 될 터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노인이 사회적 부담으로 되어 가니….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럴수록 노인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보다는 지금 사람과 더 친하게 지내고 버리고는 채우지 말아야 하는 순환의 이치대로 살아야 한다.

문화 중고등학교에서 지난 34년간 교목(校牧)으로 지내시면서 후진교육에 평생을 바친 강대권(姜大權) 목사가 초로(初老)가 되어 학교를 떠난다. 이런 분은 사회적 짐이 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밝게 이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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