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그뿐이랴. 세상을 살다 보면 상사나 배우자의 쓸데없는 잔소리,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구역질 나는 동료의 행동, 혈압 올리게 만드는 아래 사람들의 꽉 막힌 일 처리, 신문만 펼쳐들면 울화통이 터지는 세상 돌아가는 꼴, 모든 것이 내 뜻 내 마음 대로는 잘 안되어지는, 그야말로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뭐든지 닥치는 대로 확 뒤집어 엎어버려야 후련하고 직성이 풀리지, 그렇지 않고는 혈압 올라 제 명대로 못살 것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면 이러한 고통과 짜증을 신경질적인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나아가 이러한 삶이 고되고 지루하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즉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사회생활에서 불평불만이 많고 매사에 싫증을 잘 내고 조금 마음에 거슬린다고 금시 짜증을 내고 화를 잘 내는 그런 사람은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공기를 탁하게 하여 명랑한 생활의 저해요소로 작용할 뿐 아니라 주위에 사람을 멀리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살이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울화통과 짜증, 고난과 역경, 이를 참고 견디고 극복하는 비법이 바로 인내심이라 할 수 있다.
인내심이란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다. 인내는 한자로 `참을 忍`자와 `견딜 耐` 자로 되어 있다. 참을 忍자는 뜻이 깊다. 마음 心자와 칼날 刃자의 합한 글자다. 즉 참는다는 곳은 우리의 마음에 칼날을 갖다 대는 것이다. 칼날로 우리의 마음을 베는 것이다.
그야말로 칼로 베는 듯한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마음을 억제하고 참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억제하고 참아야 하는 것인가? 고통을 참고 분노를 참아야 한다. 세상에서 무슨 일보다 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인간이 죽음의 괴로움을 참고, 재물에 대한 욕심을 억제하며 모욕에 대한 분노를 참는다는 것은 상당한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중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가독교에서는 10계명을 가르치고, 불교에서는 4苦(生病死)나 5慾(재물, 색, 음식, 명예, 수면)으로부터 해탈해야 한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는 공부이며 인내력의 연마처럼 귀중한 것도 없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과 승리의 원동력은 바로 인내심이다.
인내는 한번 세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한결같이 분투노력하는 것이다. 인내력은 지구력이며, 칠전팔기하는 힘이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지면 넘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찍는 강한 의지력이다.
우리의 앞길에는 넘어야 할 험준한 시련의 산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다. 인생은 안이한 탄탄대로가 아니며 실패가 있고 도전이 있으며 모험이 있다. 우리는 꿋꿋한 자세로 슬기 있게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는 생명력이 약하다. 그러나 벌판에서 비바람을 견디면서 자라나는 야생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사소한 즐거움에 도취되어 보다 큰 영광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보지 못하고, 파멸을 초래하는 작은 분노들을 폭발시키기에 분주해서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생각도 해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분주하게 생을 살아간다.
인간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음의 충동이 일어나는 대로 행동해 버린다면 다른 동물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다. 그뿐 아니라 그런 사람은 급기야는 사회에서 도외시 되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이다.
참고 견디지 못하는 실수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나를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키우기 위해서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의 인생을 성공의 삶으로 이끌어 갈 수 없다.
그야말로 인내는 값없는 희생이 아니라 확실한 대가가 지불되는 생의 투자요, 말 없는 투쟁이며, 영광스러운 승리인 것이다. 그래서 프랑의 문호 루소는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상살이에 있어 인내는 그 어떤 무기보다 더욱 유용한 무기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