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2009)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천수호 시인의 첫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이 출간되었다. “감각적 상상력이 빚어내는 회화적 풍경들”(김수이)로 채워진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붉은 현기증”을 다 느꼈다. 그리고 “잘 지워지지 않는” “떫은, 목메는 감물 흔적”이 내 몸에 새겨졌다. 시를 통해 내 마음의 새로운 촉을 키우는 것, 이 또한 시집 읽기의 큰 매혹 가운데 하나다. 이 시는 한국 서정시의 첫 문을 연 ‘공무도하가’의 한 주인공인 백수광부의 처의 목소리를 빌려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바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때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사내(백수광부)가 강물로 뛰어들어 죽는 것을 목격한 그 아내의 슬픈 울음을 곽리자고의 아내가 공후인을 타면서 부른 노래이다. 남편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백수광부 처의 마음 자리를 빌려 노래하고 있는 천수호의 이 노래는 열 번이나 거듭 사용된 ‘촉촉’에서 시작되어 ‘촉촉’으로 끝난다. “시위를 떠난 화살”로 비유된 시적 화자는 ‘촉촉’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내 촉이 가 닿아야 할 과녁이 흔들리고, 아니 과녁이 된 내 몸마저 흔들리고, 촉만 남은 내 몸이 아직도 휘적휘적 날고 있다고 말한다. 부사 ‘촉촉’은 젖은 상태를 말함이요, 화자의 절망에서 솟아나는 눈물을 뜻하는 말일 게다. 과녁에 가 닿지 못하고 미친 듯 휘적휘적 떠돌고 있는 저 화살은 화자를 포함하여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 심리를 비유한 것이리라. 저 화살처럼 원래 우리의 삶이 과녁을 나아가는 한 과정이 아닐까. 삶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견뎌내어야 하고 또 생(生)의 목적이 분명 무엇인지 끝까지 궁구(窮究)해 나가야 할 일이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