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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자전거

이창형 기자
등록일 2009-05-11 21:15 게재일 200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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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날을 맞아 찾은 고향집에도 봄을 건너뛰는 계절 탓인지 5월 뙤약볕이 뜨겁다.


팔순의 아버지가 창고 한켠에서 구입한지 족히 10년은 지났을 낡은 자전거 한대를 꺼내서는 애지중지 닦고 계신다.


10여년 전 동네 어르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식들이 사 드린 스쿠터오토바이를 타고 뽐을 내실 무렵, 나도 아버지께서 마실을 다니시든, 논밭을 오가시든 편리하시라고 그것을 사드렸다.


낡은 자전거를 손보고 계시는 아버지께“오토바이는 어찌하셨어요”라고 여쭈니, “그놈도 주인을 닮았는지 툭하면 고장이 나서 병원비가 만만찮아 폐차를 했다. 멀리 다닐 일도 없지만 이참에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고 하신다.


어릴적 대통령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에서 곡강초등학교까지는 족히 4km 거리였다.


통행수단이라곤 전무했던 시절, 자전거는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 그 이상의 의미였다.


요즘은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고 산간오지라고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버스가 다니고 있으니 교통수단의 부족에 따른 불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난 자전거가 없었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동무들은 천보자기에 싼 양은도시락의 김칫국물이 책과 뒤범벅이 되도록 집에서 학교까지의 긴 거리를 뛰었다.


비록 포장도로는 아니었지만 나름 생생 달리는 부잣집 친구의 자전거 꽁무니를 쫓아가는 친구들의 긴 등·하굣길이었다.


비가 오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눈이 오면, 그 겨울을 만끽하며 산천을 뛰어놀던 그 유년기, 덕실마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그 계절의 온도차에 적응할 수 있는 자연의 백신을 스스로 처방받을 수 있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뿐이랴, 유년시절 자전거에 대한 단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울고 웃는 사연이 가득 담긴 편지를 전해주던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 연탄과 채소를 배달하던 동네 가게 아저씨의 자전거, 뒷자리에 아이를 태우고 장에 가시던 아버지의 자전거, 학교에서 귀가해 자전거 뒷켠에 비료포대 한가득 소 꼴을 해서 숙제를 다 한 기분으로 집으로 달려오던 기억들.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를 보면서 그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꿈을 키웠던 내 유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또 5월이다. 하지만 그런 애틋한 기억 속의 자전거는 이제 볼 수 없다.


21세기 끝자락에 자전거가 뜨고 있다.


건강 증진과 자동차 대체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도 절약하고 그야말로 1석3조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정부 차원의 자전거산업 활성화 계획을 차치하더라도, 꽉 막힌 도로에서 지독한 매연을 내뿜는 이웃 차량을 향한 무한의 경쟁사회의 아귀다툼에서 일탈하고 싶은 ‘슬로우맨’ 이 되고 싶다. 느림의 여유를 통해 인간 본성의 선린을 위해서는 자전거에 올라 앉아 서로 소통하는 본성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때 철강산업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에서는 형산강변을 따라 줄을 잇는 노란 자전거 물결이 장관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그 자전거 물결 속에서도 오토바이란 괴물이 등장해 자본주의란 틀을 앞세워 편을 가른 것이 이 극심한 격차의 현실을 사는 우리의 세태와 다를 바가 뭐 있었겠냐만, 그래도 경적소리를 울려대며 질주의 본능을 짐승처럼 포효하고 있는 이 시대에서 반추처럼 돌이켜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다.


자전거산업의 활성화 방침이 정부의 일회성 시책에 그치지 않고, 각 자치단체들의 앞다툰 관련 정책 또한 정부 정책의 장단 맞추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에게 왜 자전거가 필요한지의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탄소 녹생성장이란 시대적 요청으로 자전거가 등장했다면, 그 자전거는 인간 내면에 그린에너지를 심어주는 활력이 돼야 하며, 자전거산업이란 측면의 경제성을 앞세우기 전에 자전거문화란 철학을 바탕으로 그 자전거가 ‘소통의 무기’가 되길 희망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프랑스의 공공자전거 대여시스템인 ‘벨리브(Velib)’가 한국적 현실과 정서에 맞게 착근하고 일본의 게타(전통신발)와 같은 이미지로 형상화해 ‘행복한 두 바퀴’란 한국적 자전거문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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