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열도로교통공단 경북지부 교수
지난 2월26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일부 조항을 위헌이라고 선고했는데 그동안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던 교통사고 발생 시 처리원칙과 예외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조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재판소 위헌선고가 있기까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제기돼 왔던 문제가 무엇이고, 위헌선고 후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 편익을 증진하고자 1981년 12월31일 제정, 1982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법률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 범죄에 대한 두 가지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첫째, 운전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을 망가뜨린 경우 무면허운전·주취운전·중앙선침범 등의 중요한 법규위반으로 인한 사고를 제외하고는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가해 운전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다.
둘째,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 전액을 보상하는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때에는 피해자로부터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가해 운전자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사망사고, 특례 예외조항 10개 항목(올 12월 말부터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사고도 예외조항으로 추가된다.)에 해당하는 경우, 교통사고 야기 후 구호의무를 위반한 경우, 도주 또는 유기 도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와 관계없이 피해자와 합의를 하거나 피해 전액을 보상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례조항은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들에게 일정부분 형사처벌을 면해 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운전자 보호조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법학자들과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법리적 문제와 교통사고 발생억제 및 처리과정에서의 문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해 왔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26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 본문 중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피해자로 하여금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이 교통사고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고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3월27일 교통사고 처리과정에서 중상해 기준을 제시했다. 그 기준은 생명에 대한 위험(인간의 생명유지에 불가결한 뇌 또는 주요 장기에 대한 중대한 손상), 불구(사지절단 등 신체 중요부분의 상실중대변형 또는 시각·청각·언어·생식기능 등 중요한 신체기능의 영구적 상실), 불치나 난치의 질병(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중증의 정신장애, 하반신 마비 등 완치가능성이 없거나 희박한 중대질병) 세 가지다. 이 지침은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조항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개정된 법령의 내용에 따라 향후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나 검찰의 지침은 헌재 위헌 취지와 판례 등을 감안해 만든 만큼 큰 줄기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상해 판단에 대한 판례가 많지 않고 가치적 판단요소가 있으며 형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적용하는 중상해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기준적용에 대한 혼란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헌 이후 내용에 대해 찬반이 나뉘고 있다. 대체로 학자나 전문가는 찬성하는 입장을, 운전자(특히 사업용 운전자)는 반대하는 입장을, 실무자나 언론에서는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위헌으로 인한 혼란을 예측해 위헌판정보다는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리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았는가 하는 의견들도 내비치고 있다.
물론 중상해 교통사고 적용범위에 대한 판례나 지침이 거의 없어 당사자 간에 마찰이 발생하고 법률 분쟁이 속출할 수도 있다. 또, 실무자들의 업무가 증가하고 혼란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교통사고 피해자의 과도한 합의금 제시로 인하여 사고를 야기한 운전자들이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헌법재판소의 위헌은 왜곡된 법 현실을 바로잡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해자 편향적 법질서를 바로잡고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가능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운전자들이 평소 사소한 교통법규라도 법규준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고 안전운전하도록 경각심을 불어넣음으로써 교통사고 발생과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교통사고 발생 시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도록 하는 문화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