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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사람과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

김기포 기자
등록일 2009-05-08 21:39 게재일 200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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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포 < 포항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이라는 책에는 변화의 소중함을 담아낸다.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고치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사람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미완성의 존재다. 사람은 되어 가는 존재다. 만들어지는 존재다. 사람은 완성된 작품으로 되어져가는 존재이기에 항상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요. 순례자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십자가에 대해 늘 불평을 했다. 그의 십자가는 길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를 “왜 나에게 다른 사람과 다른 십자가를 주셨습니까?” 어느 날 천사장은 십자가를 원망하는 사람을 천국의 십자가 창고로 데리고 갔다.


창고 안에는 처음 보는 십자가들이 많았다. 천사장은 “원하는 십자가를 고르라!”고 했다. 불평꾼은 이왕이면 황금 십자가가 좋다고 생각하고 십자가를 졌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한 발자국도 꼼짝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창고 깊은 구석에 작은 십자가를 발견하고 어깨에 메어보았다.


이제는 가볍기는 했지만 뾰족한 가시들이 많아 어깨가 고통스러웠다. 결국 가장 적당해 보이는 십자가를 골랐는데 제법 지고 갈만한 십자가였다. 천사장이 말했다. “여보게 십자가를 자세히 보게…” 태양 아래 비추인 십자가는 처음에 자신이 지고 가던 십자가였고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불행은 만족 할 줄 모르는데 있다. 행복은 자족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관계다. 지금 나의 전존재, 그리고 건강상태, 배우자, 자녀, 일터, 고난, 실패와 아픔 등은 내가 져야 할 최선의 나의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불완전한 것을 완성품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자의 모습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래서 환경에 매여 산다. 이런 사람은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당하는 사람이다.


마치 온도계 같이 날이 더우면 올라가고, 추우면 내려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종속된 사람이다. 그래서 늘 불평한다.


또 하나는 자신의 생각과 목적에 따라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그 생각과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변화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을 변화시킨다. 마치 냉열기 같이 스스로 열을 내어 주변을 덥게 하든지, 스스로 열을 내려 주변을 춥게 한다. 이런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환경을 리더 해 나간다. 불행을 행복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 시켜나간다. 여기에 인간의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과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과 목적에 따라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려서 흑인 노예 가족이 제각각 팔려서 울며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그의 머리 속에는 흑인해방이라는 생각과 목적이 분명하게 섰다. 그는 의로운 정의감에 불이 붙었다. 결국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뭔가 되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뭔가 되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인생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한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이라는 이야기’는 애벌레의 삶은 곧 변화의 삶이었다. 줄무늬 애벌레가 태어나 주위의 식물을 먹는 부분은 우리 인간의 영아기와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이후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부분은 유아기로 생각할 수 있으며 다음으로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는 청소년에서 죽음까지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며 마지막으로 나비가 되는 단계는 자아실현, 성인, 이데아 세계, 철학자, 삶의 목표 등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애벌레의 삶을 통해 우리 인간을 비추어 보면 자신의 울타리 안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외부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나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애벌레 기둥처럼 헛된 욕망과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허황된 목표를 이루고자 남을 밟고 올라서기도 하고 때론 밟히기도 한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오직 정상에 올라야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상에 오르지만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게 되고 오히려 정상에서 떨어져 죽는 애벌레들을 보며 헛된 욕망에 대한 무상함을 느낀다.


우리는 세속과 더불어 변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인생의 무상과 인생의 허무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변화를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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