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서양화가 이대천(34·사진)씨는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던 1995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하루보 빠짐없이 이 생각을 견지한다.
미대생의 꿈은 작가다. 물론 이 꿈을 이루는 졸업생은 드물다. 전업작가들은 ‘인연’이 닿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200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면서 그 꿈에 한발짝 씩 다가서고 있는 사람이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4월에 노드라인 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뮌스터라는 도시에서 처음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후 부인 박은정(33)씨가 독일로 오게 되었고 같이 생활하게 됐다.
그곳에서 어학과 미술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마페(Mappe) 즉 입학을 위한 드로잉과 작업을 준비했다. 어학과 함께 마페를 준비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입시와는 사뭇 다른 독일의 미대 입시를 접하면서 힘든점도 많았지만 마페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후 어학시험(DSH)를 통과하고 드레스덴 미대에 입학하게 되면서 2005년부터 드레스덴에 머물게 됐다. 독일은 대학과정이 5년으로 이 과정을 마치면 디플롬(Diplom)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한국에서의 석사과정과 동일하다. 현재 이씨는 7학기를 마치고 베를린 예술대학(UDK)으로 옮길 예정이다. 왜냐하면 베를린에서 Lucander 교수 아래에서 마이스터(Meister) 과정을 마치고 싶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작업도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29일 결혼식을 위해서 잠시 돌아와 한달 정도를 한국에서 머물고 있다.
이씨의 그림은 신표현주의로 유명하고 현재에도 역시 구상(Figur)위주의 작업들이 많은 독일작가들의 그림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림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이나 혹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샤머니즘적 스토리) 을 화면 구성이나 색을 통해신비스러운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작업의 기본적인 소재는 어린시절의 기억이나 책으로 부터 찾는 경우가 많고 주로 도깨비, 사냥꾼, 돌, 풀 등의 자연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사용했던 텐트의 이미지도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독일로 유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좋아했던 작가들인 독일 출신의 작가 시그마 폴케(Sigma Polke), 바젤리츠(G. Baselitz) 등도 많았고 독일에서 공부하신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독일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씨는 오랜 시간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생각한 뒤 집중해서 두 세 개의 작업들을 동시에 한다. 작업이 안 될 때는 주로 책을 읽거나 드레스덴 엘베강가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주변의 작은 것들을 관찰하며 영감을 얻는다.
이씨는 체 게베라의 예술적 감수성과 확고한 신념 그리고 혁명정신을 존경한다.
화가 중에서는 현재 미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영국인 Peter Doig의 그림을 좋아한다.
“독일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그에게 더 많은 그림을 빨리 그려달라고 독촉하는 겔러리스트에게 그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서두르지 마세요….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잖아요….” 그의 여유와 느긋함이 묻어나는 이 대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급함을 가지고 성공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 많은데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서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2009 거주 작가 프로그램(Residency program,. Plettenberg)으로 6개월간 집과 작업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작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끝나면 개인전을 열어주고 그 동안의 작업을 발표할 기회를 준다.
이씨는 부부가 함께 유학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부인 박은정씨는 대학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드레스덴대에서 현재 미디어인포메이션으로 전공을 바꿨다. 베를린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그곳에서도 뭔가 다른 것을 찾아볼 생각이다.
“일단 외국 생활이라는 것이 외롭고 힘들기 때문에 함께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둘만의 시간이 많아서 서로 많이 의지하게 됩니다. 나쁜 점이라면 한국인 부부가 함께 생활하면 아무래도 어학을 공부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한국말로 대화하기 때문에….”
이씨는 작가로 남고 싶은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로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만으로 생활하면서 살고 싶다. 작가로 성공해서 다른 직업을 가지지 않고도 생활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에만 충실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씨는 작가로 살며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사이로 지내온 부인 박씨가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독일에서 우린 가난하지만 행복합니다. 외롭고 힘든 생활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씨는 드레스덴시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고 했다.
“드레스덴시는 동독으로 편입돼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깊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독출신의 사람들은 아무래도 외국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먼저 이야기를 걸어주지만 동독사람들은 수줍음이 많아 먼저 이야기는 걸어주지 않지만 그래도 친해지면 매우 친절하고 정이 많습니다. 한국은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건 사실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면 먼저 떠올리는 건 북한과의 분단된 나라라는 이미지입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홍보를 더 많이 하고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독일미술에 대해서는 “독일 미술을 딱 꼬집어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일은 칸트나 괴테 등 유명한 철학자들을 배출해 냈고 바움가르텐 같은 미학자 등 다른 유럽에 비해 탄탄한 미술이론이 바탕이 된 나라이지요. 신표현주의로 유명하고 현재에도 역시 구상(Figur)위주의 작업들이 많다. 현재 독일에서 세계적인 젊은 작가를 뽑자면, 네오 라우흐, 마티아스 바이셔 그리고 에버하르트 하베코스트 등 동독출신의 작가들이 많다”고 했다.
이씨는 오는 26일 출국한다. 그리고 5월1일부터 플레텐베르그에서 생활하면서 작업을 하게 되고 10월 플레텐베르그와 12월라이프찌히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그리고 올해말부터 베를린 (Universitaet der Kuenste Berlin, UdK)에서 학업을 마칠 예정이다.
“공부는 2년 정도 남았고 졸업 후에는 어느 정도는 베를린에 남아서 작업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아직도 언제 귀국할지는 모릅니다.”
이씨는 주위에서 한국에서 이룰 수 있는 꿈들을 먼나라에서 이루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손사래를 친다.
“한국에서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친구들이 졸업 후에 작업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줍니다. 그리고 갤러리도 한국보다 많이 있기 때문에 기회가 조금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유로화는 많이 비싸지만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림도 팔리고…. 돈을 버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어나 문화는 처음에 적응 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씨는 여행을 좋아해 독일과 유럽 여행을 많이 했다.
“독일이나 유럽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복원 하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와 많이 다릅니다. 이들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복원하려고 애를 쓰고 그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을 투자합니다. 우리나라는 늘 급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꼼꼼하고 철저하게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늘 부럽습니다. 그리고 여행지는 아무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드레스덴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곳은 관광도시로 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많은 볼거리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내쪽의 건물들은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많아 아름다운 엘베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독일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박물관도 많이 있어서 독일의 옛날 회화와 그리고 보석들,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작센스위스라고 하는 아름다운 산도 있습니다.”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고 작가로 남길 원한다는 이씨.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그곳에서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는 그의 꿈이 ‘소복소복’잘 영글기를 기원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